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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묵향을 더듬다]
에너지와 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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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7 년 8 월 [통권 제5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3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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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핵융합이란 고도의 가열로써 수소 핵을 융합식혀[16a] 헬리움 핵으로 변환식히는 것이다. 4개의 수소 원자를 융합식혀 1개의 헬리움 원자로 변환식혀 기시(其時)(주1) 발생되는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 수소폭탄이다. 수폭(水爆)은 대개 원폭(原爆)의 천 배의 위력을 발하는 것이니 핵융합의 가연제(可燃劑) 즉 기폭제는 물론 우라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공적으로 원수폭(原水爆)만 성공한 것이 안이라 이때까지 미해결이던 태양의 열원(熱源)도 자연적 핵융합이란 사실이 명백하여진 것이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는 원자력으로 증명되여 히로시마(廣島)의 참상(慘狀)을 연출(演出)한 것이다. 이는 비단 군사상 정치상 획기적 사태를 달성한 것일 뿐 안이라 현대과학의 개가(凱歌)이며 따라서 삼천년간 폐쇄되였던 불교 진여상주(眞如常住) 이론의 방증(傍證)이 되였던 것이다.

 

차. 에너지와 진여(眞如) [16b]

 

질량 에너지 동등원리, 즉 등가원리에 의한 보존법칙으로 본다면 우주 만유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현상 이대로가 전부 불생불멸이며 영원상주이다. 질량 에너지 양대(兩大) 원칙은 현금(現今)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통합되여 호칭되는 바, 우주 만유의 상주불멸을 부정하려면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부정해야 하고, 다라서 등가원리 원수탄(原水彈) 전부 부정하여야 하나니 이 만방(萬邦)에 공인된 엄연한 사실들을 부정하려면은 차라리 중천(中天)에 높히 뜬 저 태양을 부정함이 가(可)할 것이다.

 

이것은 수천 년간 노력한 인간 지식의 결정(結晶)이어니와 삼천 년전 인도 일우(一隅)(주2)에서 고성제창(高聲提唱)(주3)한 석가의 사자후를 다시 한 번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체법불생(一切法不生) 일체법불멸(一切法不滅)!”

우주 만유는 불생불멸[17a]은 진여의 발현이여서 산천초목(山川草木) 인축금수(人畜禽獸) 일월성운(日月星雲) 유형 무형 할 것 없시 일체 전부가 불생불멸이며 영원상주라고 갈파(喝破)한 것이다. 천 년 고경(古經) 중(中)에 매몰(埋沒)되였든 만세공리(萬世公理)는 금일 원수탄(原水彈)을 맛남으로써 그 광명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지식은 수천 년간의 합동 노력으로써 비로소 대보존법칙의 완전 결론에 도달하여 일체의 상주불멸을 인식케 되였으나 석가란 인간은 도대체(都大軆) 무슨 능력의 소유자인지 또한 재삼 경탄 안흘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동일한 결론을 가진 진여와 에너지는 동일한 것인가? 그것은 대불연(大不然)하다.(주4) 에너지는 우주 만유의 표면현상이지 만유의 근본 실재는 안이요, 진여는 만유의 근본 실재이니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에너지는 진여의 피상적인 표면지발현(表面之發現)인 것이지 진여의 자체(自軆)는 절대 안이다. 그러나 일체가 [17b] 불멸하는 진여의 발현임으로 에너지 역시 불멸이여서 무슨 표면지현상(表面之現象)이라도 그 진상(眞相)을 파악하면 결국은 불멸에 도달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능히 일반 인간 경험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보존법칙의 원리로서는 심오난사(深奧難思)한 우주의 대근본원칙인 진여를 파악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상적 관찰이지만은 우주 만유의 상주불멸을 확인하여 진여묘리(眞如妙理)의 확실무의(確實無疑)함을 방증(傍證)하여 준 에너지 보존법칙이야 참말로 일대 희소식이 안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심묘난측(深妙難測)한 진여법문(眞如法門)에 들어가는 길을 개척하여 준 그 공적이야말로 지대하다고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여증지(眞如證知)
가. 이언절려(離言絶慮) [18a]

 

“모든 법이 본래로 언어로 설명할 수 없으며 명자(名字)로 형용할 수 없고 심념(心念)으로 생각할 수 없서 절대 평등하여 변동식힐 수 없으며 파괴할 수 없어 오즉 일심(一心)뿐일새 진여라 하나니라.”(一切法從本已來 離言說相 離名字相離心緣相 畢竟平等 無有變異 不可破壞 唯是一心故名眞如 – 『起信論』)(주5)

여기서 일심이라 함은 물심(物心) 상대의 심(心)을 말함이 안이요 불교에서 항상 말하는 바 “마음도 안이며 물건도 안이요 부처도 안인”(不是心 不是(주6)物 不是佛) 우주 만유(주7)의 실체 즉 진여를 지적함이니 심진여(心眞如)라고도 많이 부른다.

 



 

 

그리하여 진여를 일심이라고만 부르넌 것이 안이라 또한 일물(一物)이라고도 한다. 즉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본래로부터 [18b] 밝고 밝으며 신령(神靈)하고 신령하여 생성되지도 않고 파멸되지도 않으며 무슨 명목으로 지적(指摘)할 수도 없고 었떤 상모(相貌)로 형용할 수도 없나니라.”(有一物於此 從本以來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주8)

 

그러면 무슨 명목을 붓힐 수도 없는 것을 하고(何故)로 심(心)이니 물(物)이니 진여니 하는가? 우주 만상이 다 – 이 실체에서 발현되여 일체 작용이 전부 이 실체의 활동임으로 그 발현의 실태에 따라 천명만호(千名萬號)로 무어라 표현하드라도 그 실체에 배치될 것 없으며 또한 억만칭호로 표현하여도 그 실체에는 상관될 것 없다. 일체 만법이 전혀 설명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 없는 이 진여의 발현이기 따문에 일체 만법도 또한 설명할 수도 없고 형용할 [19a] 수도 없서 변동과 파괴가 불가능한 일심 즉 진여라는 것이다.

(주1) “그때”
(주2) “한쪽 구석” 또는 “한 모퉁이”
(주3) “소리 높여 어떤 일을 처음 내놓아 주장함”
(주4) “절대 그렇지 않다”
(주5) T32, p.576a.
(주6) 스님의 친필 원고에는 ‘是’ 자가 빠져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 글자를 넣어서 적었다.
(주7) 스님의 친필 원고에는 ‘有’ 자가 빠져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 글자를 넣어서 적었다.
(주8) 『선가귀감(禪家龜鑑)』(X63, p.73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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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 주제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과 금강대학교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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