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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속 성철 큰스님]
해인총림과 성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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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7 년 9 월 [통권 제5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8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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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서 해인총림과 관련한 기사를 조금 더 봅니다. 총림을 출범시키면서 수행 도량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해인사에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시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철 큰스님은 해인사 ‘해인성지’라는 글씨를 직접 쓰고 해인사 입구에 표석을 세워 수행 공간임을 알렸습니다. 또 총림을 진단한 기사에서는 당시 교계의 상황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불교에 대한 기대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 220호, 1967년 10월 29일 1면 

관광객 엄금을 건의
선림회 총회 해인사 총림에

 

선림회(禪林會) 제2차 임시총회가 지난 20일 80여 명의 회원이 자리를 같이한 가운데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렸다.

 

회장 석암스님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날의 임시총회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고암대종사의 종정교시와 해인총림 방장화장 성철스님의 법어에 이어 지월스님(해인사 주지), 향곡스님(동화사 주지), 대의스님(선학원 이사장)의 격려사가 있은 뒤 토의사항에 들어갔다.

 

토의안건으로는 ① 총림 설치 대비에 관한 건, ② 회칙 개정의 건, ③ 임원 사표 처리에 관한 건, ④ 선학원에 관한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총림 설치에 관하여는 결의문과 건의문을 채택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본분인 일대사인연을 위하여 우리는 총림의 종치(宗幟) 그 법 아래 모여 갱가발심(更可發心) 화합단결 근수(勤修) 전진하기로 한다.
2. 우리 승가 본연의 자태는 원융무이에 있으니 간격없는 마음으로 일체 보왕이사(寶王理事) 관념을 타파하고 모든 것에 솔선수범함으로써 성실을 다한다.
3. 우리의 구경 목표는 오불심종(悟佛心宗) 해행상응(解行相應)에 있으니 계정혜 삼학을 갖춰 통관하여 필경 중생교화에 만전을 기한다.

 


 

 

한편 건의문의 요점을 보면 해인총림의 환경을 정리하여 달라는 것인데, 첫째 일주문 이상은 일반 관람객의 출입을 금하여 주고, 둘째 일반 사람의 관람과 견학하려는 사람을 위하여는 봄가을에 한 달씩만 개방하여 줄 것, 셋째 대적광전을 앉아 참선할 수 있도록 난방시설을 갖춰줄 것 등이다.

 

다음 회칙 개정에 있어서는 원래 선림회 사무실이 부산 선암사에 있는데 이를 동래 범어사로 옮기기로 하였고 회원 자격에 있어서는 전에는 일률적으로 회원으로 하던 것을 구별하여 주지직을 가진 회원은 평회원으로 하고 주지직을 갖지 않은 회원은 정회원으로 하기로 하였다.

 

또 지금까지 조직간사를 2인 두었던 것을 1인만 둘 것에도 합의하였다.

임원의 사표 문제는 이미 제출된 사표를 전원 반려하여 그대로 일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선학원 문제는 이사장 대의스님의 요청대로 사무직원 1인을 추천하여 주기로 하였다.

한편 총회를 마친 이들 회원은 3일간 해인총림 방장 성철스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었다.

 

<대한불교> 224호, 1967년 11월 26일 3면

해인총림진단

 

▲ 지난 여름 갑자기 해인사에서 열린 ‘임시 중앙종회’에서는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해인사에 총림을 설치하기로 의결하였다. 총림이란 사전을 들춰볼 것도 없이 출가 승려의 종합적인 수도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시대와 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싱싱한 구도자를 길러내는 온실인 것이다. 그럼 그 해인총림은 그새 얼마만큼 자랐고, 앞으로 어떠한 동작을 할는지, 잎을 잃어버린 나무들이 묵묵히 서있는 초겨울의 하늘 아래서, 그 맥을 짚어보기로 한다. ▼

 


 

 

○… 하루 세 끼 온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공양을 하고 있는 큰방(궁현당)에 들어서면, 잘 여문 옥수수알처럼 여백도 없이 꽉 들어찼다. 60평이나 되는 드넓은 방에 중좌(重坐) 두 벌을 쳐야 겨우 앉을 수 있는 그러한 대가족, 그 인구가 무려 1백 60명. 그 내용을 보면 선원에 60명, 강원에 70여 명, 나머지는 종무소를 비롯한 기타 대중들―.

 

한 회상에 이와 같이 대중이 많이 운집하기는 근래에 드문 일이다. 나이 비율로 따지면 20에서 30세까지가 절대 다수이다. 대중이 많이 모이게 된 연유를 알아보니 종래에 유명무실하게 ‘도량장엄’으로나 존재하던 선원이, 이제는 강원과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문호를 가림없이 활짝 열어놓은 데 있는 것 같다. 법당(대적광전)에 스팀시설은 못 하였지만 그동안 방사 수리로 가을내 일손이 바쁘게 돌아갔댄다.

 


해인총림 구족계 수계(1967년)

 

○… 같은 도량은 해인사에서는 해방 직후 ‘가야총림’이 6․25 전까지 존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총림일 수 없었다. 총림이라면 종합적인 수도장이어야 하는데, 그때는 처자를 거느린 사람들이 군림한 틈바구니에서, 대립의식을 가지고 지내던 ‘그늘진 선방’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에서인지 아직도 총림을, 선(禪)만 전수(專修)하는 도량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대가리’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 이룩된 모임이 ‘종합적인 수도장’으로서의 면목은 희미하지만 앞으로의 설계에는 사뭇 구미가 동한다. 수행기간을 7년으로 하여, 4년동안은 이론교육으로서 대학과정을 거치게 하고, 3년동안은 참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론을 배운 다음에는 반드시 선에 참여하게 되고, 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론적인 바탕을 갖추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성급한 족행신(足行神)들이 한두 철 거쳐 나온 것만으로는, 총림의 정상적인 수행과정을 밟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총림에서 수행한 승려는 종래처럼 선이나 교, 혹은 율 어느 한쪽에 치우친 편식가가 아니고, 탄력있고 쓸모있는 건전한 수행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곧 부처님의 뜻에 합당한 수행방법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지금 선원은 응향각(노전채)과 퇴설당, 조사전 이 세 군데서 가행 정진반과 보통 정진반으로 나누어 정진하는 죽비소리가 도량에 은은히 메아리한다. 그 지도에는 석암 수좌스님과 지월 도사(都寺)스님, 혜암 유나스님이 맡고 있다.

 

이론을 학습하는 강원은 궁현당과 관음전 두 군데로 나누어, 현재 경전강독은 지관스님이, 율은 일타스님이, 원시불교에 대한 부분은 법정스님이 각각 맡아 교수하고 있다. 재래식 강당에서 단조하고 무미했던 솔로(독주)를 지양, 앞으로는 보다 새롭고 폭넓은 트리오(삼중주)의 연주에 기대가 크다.

 

그리고 극락전에는 고암 종정스님이 계시고, 아직은 미미하지만 염불원과 율원이 있어 각각 고군분투중―.

 


선림회 임시총회

 

이상과 같은 정진 대중의 외호를 맡고 있는 종무소에는 혜광 감사스님을 비롯하여 보성 ․ 초우 ․ 도성 ․ 현진 등 사변에 유능한 스님들이 행정을 하고 있다.

 

○… 많은 대중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율(규범)은 백장청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방장스님은 내세운다. 그래서 총림의 기구도 방장을 중심으로 서서(西序) 동서(東序)로 나누어지고 서당(西堂), 도사(都寺), 서기(書記), 직세(直歲) 등 그 직책의 명칭까지도 모두가 귀에 선 이름들. 그래서 어딘지 해인총림에서는 짜장면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고 유머러스한 후각들은 입맛을 다시고―.

 

8세기 중국 강서산(江西産)인 그 ‘청규’라는 것이 오늘의 현실에 어떻게 용해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선은 그런 것이라도 있어야 멋대로 살던 질서 이전의 상태는 없을 것 같다는 뜻에는 점두(點頭)가 된다. 그러나 머지않은 날에 오늘 우리 현실에 알맞는 ‘해인청규’가 나와야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

 

총림에서는 앉는 차례(좌차)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불합리한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동안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은 80여 사미승들에게 보살계와 구족계를 설하고 운집한 대중들의 행동 통일을 위하여 일상적인 거동과 의식을 익히는 습의산림을 가졌다. 그리고 매달 보름과 그믐날에는 전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포살을 하고 그날 오후에는 상당법문이 있게 된다.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오던 승가의 전통이 이 총림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 총림 운영의 애로에 대해서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성철 방장스님은 이렇게 답변한다.

 

“모범적인 수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환경정리와 교육시설이 필요한데 그것을 뒷받침할 경제 문제가 곤란하다.”고.

 

총림운영에 관한 재정은 말할 것도 없이 전 종단이 부담해야 할 터인데 아직은 이렇다 할 만한 대책이 없다. 지금까지는 해인사 독자적인 사재(寺財)로써 꾸려나왔지만 그것은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내일로 향할 미래상을 제대로 세울 수가 없다.

 

모처럼 한국불교의 새싹이 움트려는 이 마당에 재정의 빈곤으로 해서 그 싹이 좌절된다면 그것은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거종단적인 호응은 물론 뜻있는 불교도들 사이에 ‘총림후원회’ 비슷한 외곽단체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 부산 선암사의 바쁜 일도 팽개치고 오로지 총림의 터전을 구축하기 위해 와 계신 석암스님은 도량에 그득 찬 대중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인화(人和)가 제일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육화(六和)정신에 입각하여 서로가 이해하고 섭수하면서, 총림 살림이 곧 내 살림이라고만 알면 원만히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그래서 스님은 인화를 위해 상하로 두루 다니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 총림이 승려교육의 총본산이라면, 한국불교의 사활은 오직 이 총림의 건강 여하에 달렸고 더구나 인재 빈곤으로 종교의 사명을 못하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해인총림은 바로 우리 전교단의 희망이요 내일에의 좌표(座標)가 아닐 수 없다. 10여 년이나 질질 끌어온 종단정화의 이념도 이 도량에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히 총림에서 지내는 스님들은 전종단의 기대와 시선을 도맡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자각, 승가의 본분인 화합을 바탕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요, 도량 밖에 있는 대중들도 이제 갓난아기인 이 ‘공동운명체’를 내 몸처럼 아끼고 북돋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염원이 아니리라. 아직도 어둠이 깔린 이 미명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벅찬 이 계절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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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 주제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과 금강대학교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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