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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오래된 미래]
초기불교의 삼매에 대한 관점과 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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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12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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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에서 대승불교 수행법을 이해하기 위해 삼매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대승불교에서 삼매의 중요성은 대승경전이 삼매 속에서 친견한 부처님과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소리나는 대로 ‘사마지(三摩地)・삼마제(三魔帝)’로도 음역(音譯)되는 삼매(三昧, samādhi)는 중국어로 정(定)・정수(正受)・조직정(調直定)・정심행처(正心行處)・식려의심(息慮凝心) 등 다양한 용어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초기불교의 수행도인 팔정도의 마지막 단계로서 기술되는데, 정려 수행과 함께 시작되는 예비적 수행을 거쳐 완성되는 수행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정정(正定), 즉 삼매는 사선(四禪)의 체계를 의미한다.

 


 

 

‘정려(靜慮)’라고 번역되는 ‘선(禪)’은 산스크리트어 ‘Dhyana’(팔리어 jhāna)의 음역으로, 대승 불교의 육바라밀 수행체계 중 선정바라밀에 해당하며 반야바라밀을 이루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으로 간주된다. ‘dhyāna’는 ‘생각하다’, ‘숙고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어근 ‘dhayai’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용어는 ‘사유수(思惟修)’라고 번역될 정도로 사유작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때 사유가 어떤 성격인가에 대해서는 초기불교 안에서도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대승불교에서 삼매의 의미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법등제삼매를 체득하여 구절구절을 해석하고, 산란한 마음 가운데 단지 지혜만 있는 것은 삼매라고 하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면 지혜가 변하여 삼매를 성취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삼매는 선정 수행을 할 때 의식 상태라기 보다 그로부터 얻어지는 지혜를 의미한다. 삼매는 선정, 해탈과 구분되는 용어이지만 용수의 저작이라고 알려진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는 모두 선바라밀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선은 삼매와 동의어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대지도론』에서는 ‘samāpatti’와 함께 ‘선정’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dhyāna’만 바라밀과 결합시키고 있는 점도 대승불교의 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 삼매의 의미와 대승불교에서 삼매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삼매를 이해하기에 앞서 사선정에 대한 예비적 이해가 요구된다. 사선정에 대한 이해 역시 시대별로 큰 차이를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초기불교의 사선정을 살펴보겠다.

 

초기불교에서 선정의 수행은 몇 가지 예비적 수행을 요구한다. 선정의 예비과정은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반드시 비구여야 하며 어떤 중생에게도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주지 않은 것을 취해서는 안 되며, 순결해야 하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금욕적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그는 비감각적 형태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는 또한 감각과 사고의 영향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행위 또한 비감각적 형태의 즐거움을 야기한다. 동시에 수행자는 모든 것을 주의집중(사띠)을 통해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예비적 수행을 거친 후 고요한 장소(아란야)를 찾아 조용히 앉아 다만 몇 가지 방해물을 제거하기만 하면 거의 저절로 첫 번째 선정(초선정)에 들어간다. 이 첫 번째 선정은 분
리로부터 발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의 상태로 심(尋, vitarka)과 사(司, vicāra)를 동반한다. 분리란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 고요한 장소에 머무는 것, 이전의 욕망의 대상을 포기하는 것을 훈련한 것을 말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적 고요에 이르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심’과 ‘사’가 멈추게 된다. 기쁨과 즐거움은 남아 있지만 그것은 첫 번째 선정 단계에서 내외의 혼란에서 분리된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삼매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선정의 상태이다.

 

세 번째 선정의 단계에서는 기쁨의 느낌에 대한 관심이 느낌 그 자체와 함께 사라지고, 평정하고, 모든 현상의 과정을 알아차리며(sati), 날카롭게 지각하게(sampajāna) 된다. 그러나 육체적인 평안으로 이해되는 즐거움이 남는다. 네 번째 선정의 단계에서 수행자는 마침내 육체적인 즐거움마저 사라진다. 침울과 고통이 제거된 것처럼 즐거움과 환희도 제거된, 완전한 평정과 자각의 상태에 도달한다. 이와 같은 순수한 평정과 자각은 부처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서, 이때 비로소 사성제에 대한 인식을 얻었다고 한다.

 

사선정과 관련하여 고찰해보아야 할 첫 번째 문제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관점이다. 8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이 해탈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부처님은 유년 시절의 선정을 기억해낸다.

 

“그때 아기베사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 사카가 (들에서) 일할 때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욕망을 일깨우는 대상들과 분리되고 해로운 속성들과 분리되어 심사와 숙고를 동반한 기쁨과 즐거움의 상태인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 도달하고 잠시 동안 거기에 머물렀다. 이것이 정각으로 가는 길일 수 있을까?’ 이렇게 기억한 후 아기베사나여, 나에게 다음과 같은 앎이 생겼다. ‘이것은 정각으로 가는 길이다.’ 야기베사나여,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왜 욕망을 일깨우는 대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해로운 속성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이 행복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아기베사나여, 나는 생각했다. ‘욕망을 일깨우는 대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해로운 속성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이 행복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세간적인 욕망에 의지하지 않는 상태, 즉 욕망의 부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선정 수행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은 혼란스러운 감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감정으로서, 이런 상태에서 평정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숙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태는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상태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하자마자 그 순간 그것은 끝나고 만다. 따라서 부처님은 이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하여 이 상태를 강화하고 변형할 수 있는 마음상태로 바꾸었다. 이것이 초선정에서 얻은 기쁨과 즐거움이 변화되어 완전한 평정과 자각이 이루어지는 상태로 심화되는 선정의 네 단계이다.

 

두 번째로 고찰해야 할 문제는 사선정으로 얻게 된 사성제에 대한 인식이 해탈을 가져오는가 하는 것이다. 평정한 상태에서 사성제에 대한 인식을 얻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전적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성제의 인식에 의해 해탈을 얻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초기불교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틸만에 따르면, 많은 전적에서 사성제의 인식이 아니라 사성제와 바른 삼매를 정점으로 하는 팔정도의 수행에 의해 해탈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잇는 접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경량부의 논서인 『구사론(俱舍論)』은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전환되는 중간단계에서 저술된 논서로서, 그 중 「정품(定品)」은 ‘정려란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구사론』의 선정에 대한 논의 중 중심은 사선정으로, 이것은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마음이 대상에 몰입하여 하나가 된 상태인 삼매를 의미한다. 『구사론』에서 선정(정려)이 심일경성, 즉 삼매이며 증상심학이다.

 

“어떤 뜻에 근거하여 ‘정려’라는 명칭을 설정했는가? 이러한 선정은 적정하며, 잘 심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려란 진실로 잘 안다는 의미로서, 이를테면 ‘마음은 선정에 들 때 참답게 할 수 있다’라고 연설한 것과 같다. 심려의 뜻 중 ‘지(地)’라는 어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부에서는 지혜를 심려의 본질이라고 본다.”

 

여기서 말한 ‘지(地)’의 어근은 ‘dhi’로서, ‘사유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구사론』은 선정의 본질적 가치가 ‘진실한 앎’을 지향하는 지혜에 있다고 본다. 욕망이나 집착, 선입견 등 부정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으면 사유는 온전하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선정이다. 『구사론』은 선정의 닦음을 통해 발생하는 사유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네 가지 선정에서 사유의 기능인 심사를 살펴보면, 초선정에서는 ‘심(vitarka)’도 있고 ‘사(vicāra)’도 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따르면, ‘vitarka’는 ‘친다’는 뜻으로 마음을 대상으로 기울이는 특징을 가지고 앞을 향해 치고 뒤로 뒤집어서 치는 역할을 하며, 마음을 대상으로 이끈다. ‘vicāra’는 계속 따라 움직인다는 뜻으로, 대상을 계속해서 문지르는 특징을 가지고 함께 생긴 현상들을 대상과 결합하는 역할을 하고, 마음이 대상에 계속 일어나게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종을 칠 때 귀를 울리는 종소리를 ‘심’이라 하고, 그 뒤를 따르는 미세한 울림을 미세한 마음의 분별로서의 ‘사’라고 비유한다. 초선정, 욕계심, 심소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이 둘이 분리되지 않지만, ‘거칠다’는 의미에서 혹은 ‘앞선다’는 뜻에서 마치 종을 칠 때 마음이 처음으로 대상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전자이고, ‘미세하다’는 뜻에서 그리고 종의 울림처럼 계속 ‘뒤따라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발생하는 것이 후자이다.

 

이상으로 초기불교와 『구사론』에서 논의된 사선정을 살펴보았다. 삼매의 의미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출세간적인 즐거움 및 사제의 인식 등과 관련된 지혜의 요소와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점은 다음 연재에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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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10년간 강사로서 학인을 지도했다. 경전 연찬을 하는 틈틈이 제방에서 정진했으며, 서울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상, 불교를 강의해오고 있다. 2016년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맡아 운영한다. 새로운 형식의 불교모임인 무빙템플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은유와 마음』,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무지한 스승으로서의 선사」, 「『선문염송』의 글쓰기-정통과 민족적 정체성의 지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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