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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간화선(看話禪)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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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5 년 1 월 [통권 제2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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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대중화, 간화선의 탄생 

 

선(禪)은 중국의 송나라 후기에 이르면 새로운 흐름으로 화두 참선법이 나오게 됩니다. 이 화두 참선법이 나오게 된 사회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사선은 깨친 조사들이 ‘본래부처 현실극락’ 소식을 전해왔으나, 주로 산중에서 출가 수행자들을 상대하였지요. 그런데, 선이 점차 널리 알려져 많은 재가자들도 참선을 하고 싶어합니다. 이미 마조 대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던 방 거사나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백낙천, 두보, 소동파, 왕유, 그리고 황벽 대사의 <전심법요>를 정리한 배휴 거사 같은 이들도 참선을 해온 재가자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의 가치가 알려져 참선을 배우려는 재가자들이 더 늘어납니다.

 

중국은 송나라 중엽에 북방의 금나라와 원나라의 외침을 받게 됩니다. 나라에 위기가 닥치자 고위관리들은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조정 대신들은 외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와 평화를 유지하자는 주화파로 나뉘어 갈등합니다. 이런 시대에 고위 관료 불자들이 산중 선사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길을 묻습니다.

  

이때 화두 참선을 제시하면서 크게 활약한 분이 대혜(大慧, 1089~1163) 선사입니다. 대혜 스님은 오늘날 간화선 교과서로 가장 많이 읽히는 <서장(書狀)>을 지은 분이죠. 당시 사대부들이 스님에게 마음 공부법을 묻고 답한 편지를 모은 책이 <서장>입니다.  

 

즉, 선의 가치에 눈을 뜬 재가자들이 늘어났으나 이를 지도하고 이끌어 줄 조사 선지식들이 많지 않으니 조사들이 깨친 기연을 화두로 주어 참선하여 깨치는 공부법이 바로 간화선입니다.  

 

화두(話頭)란 조사 선지식이 도를 깨치러 온 수행자에게 준 말입니다. 수행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조사를 찾아가 길을 묻고 말을 듣자마자 단박에 깨쳐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대개 조사들은 이렇게 깨쳤지요. 그렇지만, 못 깨치면 부득이 그 말을 화두로 삼아 깨치고자 참선해 들어가야 합니다.  

 

간화선에서 화두는 1700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무(無)’자 화두입니다. 무자 화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조주 선사에게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조주는 “없다(無)”고 답합니다. 수행자가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조주는 무라 했을까? 이것이 의문이 되어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마침내 화두 일념이 되어 깨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간화선에서 말하는 화두라는 것입니다.  

 

대혜 선사는 이 화두를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고, 분별하여 따지지도 말고, 일상생활에서 부지런히 의심해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화두 참선하는 법입니다.

 

생활과 수행이 하나라 강조한 대혜 선사 

 

여기서 일상생활을 떠나지 말고 공부하라는 가르침이 요긴합니다. 대혜 선사는 일상에서 양변을 여의고 생활하면서 틈틈이 화두 참구할 것을 강조합니다. 간화선은 일상생활이 그대로 수행입니다. 이것은 조사선에서 평상심이 도라는 원리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죠. 그런데, 간화선은 직업과 가정 생활을 하는 재가자에게 마음 공부하는 법으로 제창된 것이기에 재가 생활인들이 밥하고, 청소하고, 출퇴근하고 인간 관계하는 일상생활을 그대로 화두 공부로 이어지게 제시합니다.

 

대혜 선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놓지 않고 공부해 나가면 언젠가 문득 스스로 알게 되는데 그러면 “한 군내 천리의 일이 모두 서로 방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서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 공부를 바르게 해 나가면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이 서로 원만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하여 대혜 선사는 일상생활을 떠난 공부란 없다고까지 강조합니다. 일상생활을 떠나 도를 구한다면, 그것은 파도를 떠나 물을 구하는 격이며, 금그릇을 떠나 금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더 멀어진다고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동안거를 맞아 시민선방에서 정진 중인 불자들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선사의 이러한 가르침으로 볼 때 지금 우리 참선 수행자들은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좌선만이 공부다’ 하거나 ‘화두 참선이 최고고 다른 공부는 필요도 없다’ 이런 인식으로 좌선에 집착해서 생활을 등한시하거나 절과 가정, 그리고 직장 생활을 소홀히 하고 참선만 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화두 공부도 잘되지 않을뿐더러 편협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선사가 강조하듯이 일상생활을 떠나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을 중도 정견으로 바르게 잘하면서 화두를 해나가야 공부가 순일하고 나날이 향상이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지혜와 자비심이 향상되고 화두 공부에도 진전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고 화두 공부와 생활이 분리되면 화두도 잘되지 않고 특히 일상생활에 화나 욕심이 그대로 일어나 편협한 안목으로 외골수가 되어 남과 갈등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대혜 선사는 당시 좌선 위주로 공부하던 묵조선(黙照禪)을 준엄하게 비판합니다. 묵조선은 조사선의 한 갈래로, 조동종 계통에서 출현하였지요. 묵조는 우리가 본래 부처이니 묵묵히 앉아 번뇌 망상만 비우면 그대로 부처라는 겁니다. 대혜 선사는 그냥 앉는 것으로만 부처가 된다는 것은 삿된 소견이라며 화두 일념으로 깨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선사는 생활과 수행을 일치시키고 좌선만이 아니라 양변을 여읜 일상생활이 그대로 수행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선사 스스로 이러한 삶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당시 송나라가 외세의 침략으로 국난에 처하자 대혜 선사는 따르던 고위 관료들에게 마음을 바르게 하고 용기를 내어 외세를 물리쳐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다가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16년 동안이나 유배를 당할 정도로 현실 참여적이었습니다.

 

간화선의 전파 

 

대혜 선사의 활약으로 간화선은 남송 이후 주된 수행법으로 자리잡아갑니다. 대혜 선사 이후 고봉(高峯, 1238~1295) 선사가 활약하였는데, <선요(禪要)>라는 유명한 간화선 법문집을 남겨 지금도 교과서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이르면 임제종, 조동종, 법안종, 운문종, 위앙종의 5가로 분화되었던 조사선문은 대혜 선사가 속했던 임제종과 조동종 중심으로 정리가 됩니다. 임제종에서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건립되자 중국은 당-송-원 나라로 이어지는 인류 최고의 문명시대를 구가합니다. 특히 원나라는 동으로 고려와 일본, 서로는 중동을 지나 헝가리까지 영향력을 미친 대제국이었기에 다양한 세계 종교문화가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이미 당-송 시대를 거쳐 원 나라시대에도 활발히 교류했던 고려와 일본, 베트남의 선사들도 간화선을 수용하여 선문화를 더욱 대중화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원나라 패망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선풍은 점점 쇠퇴하여 선(禪)이 정토신앙의 염불과 결합하여 염불선(念佛禪)의 경향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더구나, 중국이 공산화되고 문화혁명을 거치며 불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되고 선맥은 거의 단절되어 버립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구산선문의 조계종 선사들은 고려 중엽에 대혜 선사의 간화선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태고 스님과 나옹 스님은 화두 참선으로 깨쳐 직접 원나라로 건너가 임제종 조사에게 인가를 받아와서 선법을 새롭게 이어옵니다. 

 

태고와 나옹 스님의 헌신적인 구도행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그 뒤에 태고, 나옹 스님의 법맥이 중심이 되었고, 특히 태고 법맥은 조선조에 서산 – 사명 대사로 이어지는 큰 산맥이 되어 근대에 경허, 용성, 만공, 동산, 성철, 향곡, 서옹 선사에게로 이어져 지금까지 한국불교에 주된 흐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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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20여 년간 종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우 스님을 만나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통독하고 불교의 핵심인 중도에 눈을 뜬 뒤 화두를 체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교인재원에서 생활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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