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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5 년 2 월 [통권 제2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2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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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중순 출간된 개정증보판 『백일법문』(상·중·하)을 요즈음 다시 보고 있습니다. 1992년 4월 발간된 책보다 ‘중도’에 대한 설명이 훨씬 정연하고, 큰스님의 체취도 한껏 배어 있기에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1967년 동안거 당시 하신 법문이 1986년에야 『돈오입도요문론』, 『신심명·증도가』, 『영원한 자유』 등의 제목으로 출판됐는데, “만약 이 책들이 1970년 이전에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1970년대부터 불교학자들이 큰스님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면 스님의 사상이 널리 알려짐과 동시에 한국불교학계도 크게 발전했을 것이고, 이것이 한국불교계의 연구와 수행 풍토에 중요한 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철 스님의 대표작 저서인 선문정로와 이를 해설한 선문정로 평석 

 

그나마 47년 만인 지난해 『백일법문』을 원음(原音)에 가깝게 상·중·하 세 권으로 출간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본지풍광』·『선문정로』에 대한 연구 수준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할 따름입니다.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예문서원, 2006)에 수록된 김영욱 박사님의 ‘퇴옹의 간화선’ 이외에는 『본지풍광』에 대해선 지금까지 어떤 논문도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동의대 중문과 강경구 교수님이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5집(2013.9.)에 발표한 ‘『선문정로』 문장 인용의 특징에 대한 고찰’이 『선문정로』의 문장 구성에 대한 거의 유일한 논문입니다. 그래도 강 교수님의 이 논문을 접하곤 “『선문정로』 연구에 새지평이 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강 교수님이 얼마 전 ‘『선문정로』 문장 인용의 특징에 관한 고찰Ⅱ’라는 제목의 논문을 보내 “곧 학술지에 발표할 글인데 보시지요.” 하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한편, 강 교수님이 ‘『선문정로』 문장 인용의 특징에 관한 고찰Ⅱ’ 서문에서 말한 “전체 문장을 요약해 새로운 문장으로 구성한 경우”의 대표적 예가 『선문정로-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장경각, 2006, p.74)에 수록된 인용문 ‘3-6’입니다. 

 

인용문은 “六麁中智相은 於七地에 盡此惑也요. 三細中業相은 十地終心金剛喻定에서 都盡하느니라 : 육추의 종말인 지상은 7지에서 번뇌들이 모두 없어지고, 3세의 최후인 업상은 십지종심인 금강유정에서 모두 없어진다.”입니다. 당나라 현수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에서 인용한 이 문장의 원문을, 다소 성글은 번역이지만 분석해 보았습니다.

 

1 (법장의 주석)[是六麁中智相, 以能分別世出世諸法染

淨故, 云智也.是法執修惑, 七地已還,有出入觀異故,

於境界有微細分別. 然地地分除故, 云漸離. 八地已

去, 無出觀外緣境故, 於七地盡此惑也, 故云無相方

便地究竟離也. 以二地, 三聚戒具故, 云具戒地; 以

七地, 於無相觀有加行方便之功用故, 云無相方便地;

以八地已去, 於無相無方便功用故.]

 

[이 ‘여섯 가지 큰 번뇌’[六麁]의 하나인 ‘지상(智相)’은 세간과 출세간의 여러 현상[諸法]에 나타나는 더러움과 깨끗함을 지혜로 능히 가려낼 수 있기에 ‘지(智)’라 부른다.

 

이 ‘현상에 집착해 생기는 탐욕・성냄・어리석음・게으름・의심 등의 번뇌[法執修惑]’는 (보살 수행단계의) 십지 가운데 칠지 이하에서는 ‘나가고 듦의 봄[出入觀]’에 다름이 있기에, 경계[境界, 대상]를 대하게 되면 미세한 분별의식이 생긴다. 그런데 이 분별의식은 십지의 매 경지에서 조금씩 제거되므로 ‘점차 사라진다[漸離]’고 말한다. 팔지(八地)를 넘어서면, 보는 것 이외 반연되는 대상이 없어지는데, 이는 칠지에서 이 번뇌[惑]들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지를 ‘무상방편지구경리(모양은 없지만 방편은 있는 경지 즉 분별의식을 완전히 떨쳐버린 경지)’라 부른다. 보살 십지 가운데 두 번째인 ‘이구지(離垢地)’에서 대승보살의 계율인 삼취계를 구비하므로 ‘계를 구비한다[具戒]’고 말한다. 칠지에서는 무상관(無相觀)을 통한 가행방편의 공용이 있기에 (칠지를) ‘모양은 없지만 방편은 있는 경지’로 부르나, 팔지에 이르면 ‘모양과 방편공용이 모두 없는’ 경지에 다다른다.]

 

2 [(대승기신론 원문) 四者, 現色不相應染, 依色自在地

能離故.] [(원문에 대한 법장의 주석) “四現色不相應”者,

是上五意中現識, 是上三細中境界相, 猶如明鏡現色

像等, 此依根本無明動令現境也. 以八地中, 得三種

世間自在, 色性隨心無有障礙故, 云色自在地能離也.

以色不自在位, 現識不亡故, 此位中遣彼相也.]

 

[네 번째, 보살 십지 가운데 여덟 번째 경지인 색자재지(不動地)에 이르면 능히 현색불상응염(번뇌의 일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네 번째 ‘현색불상응’이라는 것은 앞의 ‘다섯 가지 의식[五意]’ 가운데의 ‘현식(現識)’이자, 세 가지 미세한 번뇌 중의 ‘경계상(능현상)’이다. 마치 밝은 거울처럼 모습과 형상을 나타내는데(비추는데), 이것은 근본무명의 명령에 따라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보살이 팔지에 이르면, 세 가지 세간의 자재함을 얻는데, 모양과 본성이 마음 따라 저절로 일어나 장애가 없다. 이를 ‘색자재지능리’라 부른다. ‘색부자재지’에서는 ‘현식’이 없어지지 않으나, 팔지에 이르러 그 모양들이 사라진다.]

 

3 [(대승기신론 원문) 五者, 能見心不相應染, 依心自在地

能離故.] [(원문에 대한 법장의 주석)“五能見心”者, 五意

中轉識, 三細中能見相, 以根本無明動令能見, 上文

云, 依於動心成能見故. 第九地中善知眾生心行十種

稠林故, 云心自在. 此於他心得自在, 又以自得四十無

礙智, 有礙能緣永不得起故, 云心自在地能離也.]

 

[다섯 번째, 보살 십지 가운데 아홉 번째 경지인 심자재지(善慧地)에 도달하면 능히 ‘능견심불상응염(번뇌의 일종)’에서 벗어난다.] [다섯 째 ‘능견심’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의식[五意]’ 가운데 전식(轉識)을 말하며, 세 가지 미세한 번뇌 중의 ‘능견상’을 가리키는데,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 경지인 선혜지에 이르면 중생의 마음에 생기는 열 가지의 번뇌에 대해 잘 알기에 ‘심자재’라 한다. 선혜지에서는 자기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열네 가지 막힘없는 지혜를 얻으며, 경계에 반연되는 마음과 장애가 영원히 일어나지 않기에 ‘심자재지능리’라 한다.]

 

4 [(대승기신론 원문) 六者, 根本業不相應染, 菩薩盡地,

得入如來地能離故.] [(원문에 대한 법장의 주석) “六根本

業”者, 五意中業識, 三細中業相, 以無明力不覺心動故.

“菩薩地盡等”者, 謂十地終心金剛喻定無垢地中, 微細

習氣心念都盡故.]

 

[여섯 번째, 보살 십지 가운데 열 번째인 보살진지(법운지)에 도달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면 ‘근본업불상응염’ 이라는 번뇌에서 벗어난다.] [여섯 번째 ‘근본업’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의식’ 가운데의 ‘업식’이자, 세 가지 미세한 번뇌의 하나인 ‘업상’이다. 이는 무명의 힘에 의해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번뇌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보살지가 다했다’는 것은 마지막 십지(무구지)에서 ‘금강유정’이라는 선정을 닦아 미세한 습기・번뇌마저 모두 완전히 여의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밑줄은 성철 스님이 인용한 부분).

 

성철 큰스님은 원래의 문맥과 무관하게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구성한 경우입니다. 큰스님께서 문장 전체의 대의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문정로』에 인용된 문장 전체에 대한 이런 식의 세밀한 분석은 강 교수님의 논문 이외엔 전무합니다. ‘멀지만 가야 할 길’이 앞에 펼쳐져 있으니 ‘멀고먼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큰스님이 주창한 사상이 한국불교의 독창성과 독자성, 그리고 정합성과 체계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상이라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 교수님께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다시 부탁드렸습니다. “첫째, 『선문정로』를 연구할 때 ‘경전·논서의 주석서(술기, 의기 등)’를 인용한 경우, 인용문 전체를 본문이나 각주로 처리하고, ‘해당 경전이나 논서의 본문’과 ‘주석 부분’을 구별해 한문원문에 표점을 찍고 전체번역을 한다.

둘째, 경이나 어록들 인용에 축약이 있으면 인용문 전체를 각주로 처리하고 한문원문에 표점을 찍고 전체 번역을 한다. 셋째, 성철 스님이 인용할 때 ①불필요한 문장을 생략한 경우 ②문맥을 바꾼 경우 ③문구를 대체한 경우 등에서 변화된 내용이 있다면 그 성철 스님 사상의 특징 등을 밝혀 상술한다.” 이러한 다소 당돌한 부탁을 강 교수님은 너털웃음으로 받아들이며 “『선문정로』 연구에 많은 관심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에 즐겁게 노력하겠습니다.”는 대답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실, ‘성철사상’에 대해 비판을 하던 제대로 된 평가를 하던, 성철 큰스님이 남긴 저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은 필수적 전제입니다. 이것도 없이 섣부른 편견과 오해로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학자적 태도가 아니기에,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에 대한 제대로 된 해독과 연구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이 과정에 연구자 자신의 학문적 능력은 진전되고, 한국불교도 발전될 것입니다. 큰스님의 저서에 대한 정확한 해독과 꼼꼼한 분석에 기초한 강 교수님과 김영욱 박사님의 논문이, 근거 없이 주장하는 학계 일각의 그릇된 풍토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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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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