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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해인총림 방장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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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5 년 4 월 [통권 제2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1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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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3일 백련불교문화재단 서울 사무실에서 조계종 전 종정예하이자 해인총림의 방장이시던 도림법전 대종사님의 원적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여기저기서 법전 대종사님의 열반 소식을 다시 알려 주었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내다보이는 조계사 법당을 향하여 큰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습니다.

 

서둘러 해인사로 달려가니 생전 주석하시던 퇴설당에서가 입관준비가 한창이어서 큰스님의 편안한 법안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가 입관을 마치고 큰스님 문도회의에 옵저버로 참가하여 다비식 등 향후 장례일정을 확인한 뒤 백련암으로 올라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앉아 있으니 큰스님과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해인총림 해인사 전경 

 

저는 성철 큰스님께서 직접적으로 “누가 나의 법제자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간혹 주변에서 “김천 수도암에 계시는 법전 스님이 큰스님의 법제자다.” 하는 소문들이 들리곤 했습니다. 소납이 1972년 1월에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십 몇 년이 넘도록 법전 스님을 백련암에서 뵌 적이 없었습니다. “큰스님의 법제자로 소문난 스님이라면 다른 때는 몰라도 1년에 한 번 설날에는 당연히 세배를 오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속초 ‘신흥사 사태’로 비상종단회의가 총무원을 대신하여 개혁안을 추진하다가 물러나고 초우 스님이 총무원장을 하시다가 물러나면서 법전 스님께서 총무원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불교계 신문에 ‘법전 스님이 성철 종정예하의 법제자다’는 언급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법전 스님께서 총무원장 임명장을 받기 위해 백련암에 들렀을 때 비로소 소납이 스님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 세월이 흘러서, 길상암 명진 스님께서 해인사 주지로 계실 때 큰스님께 진언을 올렸습니다. “큰스님! 해인사는 대중이 많이 살고 있으니 살림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혜암 스님께서도 많은 애를 쓰시고 계시지만 수도암에 계시는 법전 스님을 해인사로 오시게 해서 함께 사는 것이 해인사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방장 스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성철 큰스님께서는 “그래? 오란다고 법전이가 오나? 안 온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방장스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꼭 모시고 오겠습니다. 마침 원택 스님이 옆에 있으니 함께 가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래? 오든지 안 오든지, 주지스님 뜻이 그렇다면 한 번 다녀오지!”

 

그렇게 방장스님의 허락을 받은 명진 주지스님과 함께 수도암으로 법전 스님을 모시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장 스님의 판단과는 달리 삼고초려도 없이 법전 스님은 “방장 스님의 허락이 있었다면 가서 모셔야지!” 하시며 순순히 응낙하셨습니다.

 


일타 법전 성철 혜암 스님이 함께 한 모습 

 

그러나 법전 스님을 모시고 온 것은 혜암 스님 측의 불만이 되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전당수좌 혜암, 후당수좌 법전 스님으로 하고 혜암 스님에게 부방장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사중이 안정된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산중이 안정과 화합 속에 운영되다가, 1993년 11월 4일에 성철 종정예하께서 열반에 드시니 가야산이 큰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10일 가까운 장례가 끝나고 산중 어른 스님들이 모여서 후임 방장을 논의하셨습니다. 마침 종단장에 참여하고 있던 의현 스님도 입회하시어 방장에 혜암 스님, 부방장에 법전 스님, 주지에 지관 스님, 공석이던 종단 전계사에 일타 스님을 모시기로 하여 그날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혜암 방장스님께서 성철 큰스님 49재중 2재를 마치고 퇴설당으로 옮겨 착좌하셨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나 혜암 방장스님의 사의로 법전 스님께서 방장으로 추대되어 18년 동안 주석하시다 열반하시게 된 것입니다.

 

지난 추석 때 뵐 때만 해도 법안이 환하시고 건강한 모습이셔서 이렇게 떠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장례기간 중 갑자기 왼쪽 눈이 실핏줄이 터져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큰 통증은 없으나 고개를 들고 숙이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습니다. 장례 기간 중 마지막 날에야 빈소를 지킬 수 있었는데 두 시간쯤 서 있으니 몸이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리고 2월 9일 법전 스님의 49재를 마치고 오후 늦게 서울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교계언론에 난 기사를 보게 되고, 다시 2~3주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수완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던 기억입니다.
“여연 스님이 원택 스님, 원타 스님과 함께 광주쯤에서 공양이나 함께 하자고 합니다. 약속을 할까요?”
“법전 방장스님 49재도 있고, 후임 방장 추대 문제도 있고하니 한 번 만나시지요.”

 

그렇게 해서 수완 스님과 제가 광주로 가서 여연 스님을 만나 공양을 하면서 “여법하게 방장스님을 모시자.”고 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원각 스님은 여연 스님의 사형이고, 대원 스님은 수완 스님의 사숙이 되십니다. 그런데 교계언론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각 스님이 주도하는 대원 스님 방장 추천위는 번번이 약속을 어겼다. 49재까지는 후임 방장 추대에 대해서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기로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대원 스님 측은 계속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강진 백련사로 원택, 수완, 원타 스님이 여연 스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여연 스님에게 다음 해인사 주지를 제안하면서 방장선출에 대해서 부탁했다. 이런 이유로 해인사 6대 문중은 대원 스님의 추대에 반대하며 원각 스님을 후임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주지파와 백련암, 용탑선원이 중심이 되어 대원 스님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 기사를 읽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방장추대가 전통대로 산중화합에 의한 추대가 아니고 선거체제에 돌입하는 참담한 현실을 맞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대원 스님을 뵈오니 부탁을 하셨습니다.
“지금 나를 도와줄 문중은 백련암뿐입니다. 내가 좋은 결과가 있으면 백련암 스님으로 주지를 삼을 것이니 잘 도와주시오.”
“큰스님의 말씀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백련암 문도들은 첫째, 방장은 선사여야 한다. 둘째, 허락한다면 용성 문중의 선사이기를 바란다는 뜻을 천명해왔습니다. 또 선거가 아닌 추대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러니 큰스님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방장이 되시면 지금 무너진 선원의 수행가풍을 예전 성철 방장스님 시절로 재건하는 데 저희 문도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지는 꼭 필요한 문중에게 주십시오. 저희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지금 선원장스님은 스님께서 방장에 추대되심과 동시에 이 산중을 떠난다는 확답을 대중들에게 다짐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큰스님도 산중대중들의 신망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중총회 날이 되어서도 선원장스님은 대중들에게 참회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모든 것이 아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산중총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원각 스님 213표, 대원 스님 203표, 무효 6표가 되어서 “원각 스님이 산중 만장일치로 방장에 추천되었습니다.”라고 산중총회 대표인 해인사 주지스님이 선언하고 3번의 의사봉을 치는 것으로 방장추대가 아닌 방장선출 선거가 끝난 것입니다.

 

허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대원 스님께 조금 더 노력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하루가 지나자마자 ‘해인사 방장 선출, 법인법 덫에 걸리다’는 불교계 언론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재단법인 해인동문장학회가 종법상 미등록 법인으로써, 임원들과 그 도제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음에도 투표에 참여하였으니 해인사 방장 선출은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월 17일 조계종 중앙종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원각 스님을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하였습니다.

 

한편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미등록 법인 문제로 애초에 방장추대나 선거에 잡음이 있을 것임을 알았음에도 감추고 방장추대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대원 큰스님께서 산중총회의 결과를 수용하고 산중이 화합하여 수행에 정진하기를 바란다는 큰 당부를 주셨습니다.

 

대원 스님을 모시려고 애썼던 모든 스님들도 아쉽기 그지없지만 산중안정을 위해 큰스님 뜻을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큰스님께 못 다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 방장에 추대되신 원각 방장스님께서도 저간의 사정을 꿰뚫어보시고 산중화합에 진력해 주시고 해인총림선원을 성철, 고암, 혜암 방장예하 시절의 수행가풍으로 확립해주신다면 백련문중도 그 이상 고마운 일이 없을 것이고 총림안정에 힘을 보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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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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