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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인간계와 축생계 사이에서 양 다리를 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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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6 월 [통권 제2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0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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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이 사람대접을 받다

 

엄동호인들의 소규모 모임에 자리를 함께 했다. 먼저 도착한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는 애완견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에 아무도 없어 도저히 강아지 혼자 두고 나올 수 없다.”는 내용으로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아지도)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 간다면 강아지가)낯선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럴 수도 없다.”는 대답이 수화기 너머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이렇게 전해주는 농담 같은 진담을 듣다보니 ‘썸’이란 대중가요가 가사를 바꾼 채 “사람인 듯 강아지인 듯 사람 같은 강아지”라고 하면서 금방이라도 방송을 타고 흘러나올것 같다. 말나온 김에 그동안 보고 들었던 애완견 시리즈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개가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일찍 죽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랑처럼’보일 뿐이지, 개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라는 해설을 덧붙였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견 타당성을 가진다.

 

애완견에게 옷을 입히다

 

갑자기 길에서 옷 입은 애완견 만난 일이 생각나서 그 자리에서 이유를 물었다. 털이 빠지고 그것이 실내에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예 깎아버리고 옷을 입힌다고 A는 답변했다. 개가 더위에 힘들어 하는지라 시원하라고 털을 깎았는데, 기온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옷을 입힌다는 것이 B의 답변이었다. C의 답변은 주인의 경제적 능력과 미학적 안목을 자랑하려는 수단으로 개에게 옷을 입힌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주로 명품을 걸치게 된다. 그 와중에 옷을 입히기 위해 털을 깎는 모순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쨌거나 개가 옷을 입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애완견이 양 다리를 걸치다

 

애완견이란 무엇인가?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화두 아닌 화두가 되었다. 축생(畜生) 세계와 인간세계 사이에서 양(兩)다리를 걸치고 살면서 ‘사람 같은 대접을 받는 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축생의 특징은 온몸이 털로 덮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옷이 필요 없다. 이미 털이 보온이라는 옷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동안 인간과 함께 살면서 사람들은 축생이란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반려’가 되고 ‘가족’이 된다. 그런데 진정한 반려가 되고 진정한 가족이 되려면 축생세계가 아니라 인간세계로 편입되어야 한다. 열혈 애견가들 사이에서 이런 ‘가상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덕분에 이제 표면적으로는 진입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그 편입은 축생이 원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축생은 본래 자기가 가진 털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고 그 위에 이질적인 옷이 입혀지는 ‘신분상승’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봤자 가축(家畜, 집안에서 기르는 짐승)이 될 뿐이다.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명 보살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선종 제12대 조사(祖師)인 마명(馬鳴) 보살도 전생에는 인간세계와 축생세계를 오가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 몸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옷이 필요 없었다. 말(馬)처럼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뽕나무 위에 살고 있던 누에고치를 주워 모아 옷으로 충당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이왕 입을 바에는 비단 옷을 입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옷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비단 옷을 입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세계의 경쟁심이다.

 


 

 

천상세계, 인간세계, 축생세계

 

『보림전』 권3에는 옷을 구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을 3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상인(最上人)은 몸에 광채가 나고, 말을 잘하며, 생각만 하면 의복이 저절로 몸에 둘러졌다.[所念 衣服 而能自資] 중등인(中等人)은 필요한 의복을 스스로 구해야 했다.[自求衣服] 최하인(最下人)은 몸의 형상이 말처럼 생겨 ‘마인(馬人)’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주운 옷을 입어야 했다.[拾..將充衣服]” 

 

천상세계는 생각만 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세계는 자기 힘으로 생활용품을 구해야 하며, 축생세계는 남이 주는 것으로만 살아야 된다고 했던가?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세계 안에서도 상중하인(上中下人)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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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원철 스님은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리고 일간지와 교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써 주변과 소통해왔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번역서에는『선림승보전』상·하가 있으며, 초역을 마친『보림전』의 교열 및 윤문작업 중이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강주)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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