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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오래된 미래]
사념처 수행에서 ‘사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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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7 년 5 월 [통권 제4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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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은 불교수행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는데, 팔정도 뿐 아니라 오근, 오력, 칠각지, 사념처 등 다양한 수행법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정념이 어떤 수행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염처경』에 비로소 등장하는데, 염처(sati-patthana)는 “알아차림을 적용하는 행동”과 “알아차림이 적용되는 장소, 곧 그 대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處”로 번역되는 팔리어 patthana는 upatthana (산스크리트, upasthana)의 구성요소, 다시 말해 “가까이 서는 행동”이나 “어떤 것에 가까운 위치”를 의미한다.
“가까이 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념처에 대한 정형구를 통해 patthana의 의미를 이해해보자.

 


 

 

비구는 (1) 몸을 몸으로 관찰하며 산다.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면서 그는 세상에 대한 갈망과 불만을 극복한다. 승려는 (2) 느낌을 느낌으로... (3) 마음을 마음으로... (4) 법을 법으로... 부지런하고,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면서 그는 세상에 대한 갈망과 불만을 극복한다.(D 2.290, M 1.55, MPS 200)

 

위의 설명에 따르면, 염처란 수행자가 몸, 느낌, 마음상태, 법을 몸, 느낌, 마음상태, 법으로서 관찰하는 것이다. 네 가지 상태를 부지런히, 분명히 앎으로써 세상에 대한 갈망과 불만을 극복하게 된다는 것인데, 몸에 대한 염처 수행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몸에 대한 인식과 달리 염처 수행을 할 때 우리는 평소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상들, 즉 숨쉬기, 걷기, 서기, 앉기, 눕기, 먹기, 마시기 등 거의 모든 동작과 부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받는다.

 

경전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그 해석이 엇갈린다. “안/밖”을 “우리 자신의 몸/타인의 몸”이라고 해석하는 입장과 “내부로 향하는 마음 상태/다섯 개 감각을 통해 외부로 향해진 마음 상태”라고 해석하는 입장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안과 밖이 어떤 것이냐가 아니라 이처럼 몸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과 부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몸이 들숨과 날숨, 다양한 자세와 행동, 구성 부위와 기관 등으로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 특정 조건에 따라 발생했다가 소멸하는 물리적, 심리적 특징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해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물리적, 심리적 전 과정이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 결과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느낌 역시 즐겁거나 불쾌하거나 중립적인 느낌들로 해체되며, 마음의 상태 역시 감각의 작용에 묶여있으며 발생했다가 소멸하는 것으로서 지각된다. 법에 대한 염처는 1) 명상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감각대상에 대한 욕망, 악의, 혼침, 경안, 우울, 의심)가 있는지, 없는지, 2) 마음이 감각과 각각의 감각대상에 얽매이는 방식에 대한 알아차림 3) 깨달음을 이루고 구성하는 칠각지(念, 擇法, 精進, 定, 喜, 除, 捨)가 현존하는지 아닌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그는 안으로 몸을... 느낌을... 마음을... 법들을, 밖으로 [몸을... 법들을] 그리고 안팎으로 몸을... 느낌을... 마음을... 법들을 관찰하며 살아간다. 그는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들의 경우 사물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소멸하는지..... 사물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 관찰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몸.... 느낌.... 마음.... 법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그의 알아차림이 확립되면, 앎과 환기가 최대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D 2.292, 2.298, 2.299-300, 2.301; M 1.56, 1.59-60; Gethin, 2008, pp. 143, 146-148)

 

염처는 의식의 특정 대상에 대해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사물이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띠는 지혜(prajna)의 계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분명한 앎을 의미하는 saṃprajāna(正知)가 사띠와 연관하여 발생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띠가 지혜의 계발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염처 수행은 감각에 직접 주어진 대상에 대한 단순한 관찰을 의미하는 것만 말하지 않는다.

비구는 발뒤꿈치부터 위로, 머리끝에서 아래로 이 몸이 피부 속에 감싸여있고 여러 가지 오물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이 몸 안에는 머리털, 체모, 손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신장, 심장, 간, 횡격막, 비장, 허파, 대장, 소장, 식도,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기름기, 침, 코딱지, 관절액, 오줌이 있다.’ 양 끝에 구멍이 있는 자루에 여러 곡물이 들어있는 것처럼 좋은 눈을 가진 자는 “여기 쌀이 있고, 여기는 녹두, 여기는 강낭콩, 여기는 참깨가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 (M 1.57;cf. T 1.583b17; Kuan, 2008, pp. 149-150)

이런 수행은 분명 신체 각 부분들에 대한 기초적인 기억뿐 아니라 신체 여러 부분을 사전에 관찰한 기억과 상상력의 훈련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 뿐 아니라 신체 부위를 ‘더러운 것(asucin)’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사띠는 사마타 수행보다 위빠사나 명상과 더 깊이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용어는 Satipatthana-sutta에 나오지 않는다.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이루어진 첫 결집에서도 염처 수행은 위빠사나뿐 아니라 사마타를 기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Kayagatasati-sutta(신념처에 대한 경)에서는 사선정을 신념처 수행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념처 수행을 통해 마음의 집중과 안정 뿐 아니라 벽을 통과하거나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등 신통력이 계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사념처 중 첫 번째 신념처 수행으로 열거된 여러 가지 수행법들은 원래 사선(四禪)의 성취를 통해 깊은 집중 상태를 계발하는 수단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붓다고사 역시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 훈련한다면 들숨과 날숨을 집중의 대상으로 한 사선정을 성취하게 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이런 내용을 고려해볼 때 사띠가 사마타보다 위빠사나의 계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최근의 생각들은 교정되어야 할 것 같다.

 

염처 수행은 집중(samādhi)과 몰입(dhyāna)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이처럼 몰입된 상태가 사띠가 가장 완벽하게 확립된 상태이므로, 최고의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Satipatthana-sutta에서는 염처 수행을 일승ekayana의 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D 2.290, M 1.55). 이 용어는 최근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되었다. 서구의 현대적 번역에서 “단 하나의 길”로 해석했는데, 이는 이 용어의 용례에 비추어보아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이다. “향하게 함”이나 “직접적”이라는 의미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사띠는 명상 대상을 명료하게 관찰하기 위해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마음이 무익하고 심지어 위험한 곳에서 배회하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념처 수행은 마음을 가능하면 최대한 신 · 수 · 심 · 법을 관찰하는 데 붙들어 매어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도록 하여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며, 사띠는 무익한 생각이 마음을 흔들 때 마음을 지키고 주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사띠를 여섯 개의 출입문(감각)이 있는 도시(몸)를 보호하는 수문장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띠가 기억과 밀접히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수행자가 사띠를 하고 있다면 수행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느낌과 지각, 감정, 마음 상태가 일어날 때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하여 그것들이 들어와 마음을 휘젓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사띠는 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그것들이 무엇인지 특징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이상으로 사념처 수행에서 ‘사띠’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사띠’의 용례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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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10년간 강사로서 학인을 지도했다. 경전 연찬을 하는 틈틈이 제방에서 정진했으며, 서울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상, 불교를 강의해오고 있다. 2016년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맡아 운영한다. 새로운 형식의 불교모임인 무빙템플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은유와 마음』,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무지한 스승으로서의 선사」, 「『선문염송』의 글쓰기-정통과 민족적 정체성의 지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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