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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법안종과 고려시대의 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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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5 년 9 월 [통권 제2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1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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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스님은 7살에 출가하여 20살에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선사는 여항 사람으로 처음에는 복주의 장경혜능(長慶慧稜)에게 참례하였다가 종종 현사사비 선사의 제자인 지장계침(867-928)을 만나곤 했는데 마침내 그의 법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지장원을 지나다가 눈으로 길이 막혔습니다. 며칠 쉬던 차에 눈이 그쳐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자 지장 스님이 문에서 전송하며 말씀하였습니다.
“그대는 삼계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은 오직 식일 뿐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고 항상 말을 한다.”

 

그때 지장 선사는 뜰 앞에 있는 바위덩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 바위 돌덩이는 그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마음 밖에 있는 것인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하나의 바위돌덩이를 마음 속에 두고 있는가?”

 

스님은 말이 궁색하여져 대꾸할 수가 없었습니다.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지장 스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법석에서 결말을 짓기를 청했습니다. 한 달 남짓 매일같이 매일 견해를 진술하며 도리를 마지막까지 설명해 보이자 지장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생각할 도리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눈앞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인 것이 아닌가?”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암사 태고선원 모습. 

 

법안 스님은 그 말끝에 확실히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당말 5대 10국의 선의 최후를 장식하며 송 초의 불교를 크게 인도하는 법안종(法眼宗)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법안 스님의 법은 제자인 천태덕소(天台德韶, 891-972)로, 천태덕소의 법은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스님으로 이어졌습니다.

 

법안 스님이 남긴 다음의 유명한 ‘삼계유식(三界唯識)’의 송이 있습니다.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존재하는 만상은 모두 식(識)이니라.(三界唯心 萬法唯識)
오직 식(識)일 뿐이며 삼라만상이 오직 마음뿐이니(唯識唯心)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는 물질을 보아야 하니(眼聲耳色)
물질은 귀에 이르지 못하고(色不到耳), 소리인들 어찌 눈에 닿을 수 있겠는가(聲何觸眼)
눈으로 물건을 보고 소리를 들을 때(眼色耳聲) 일체의 존재가 식별되며(萬法成辨)
삼라만상이 인연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萬法匪緣) 어떻게 아지랑이와 같은 존재를 볼 수 있을까?(豈觀如幻)
누가 산하대지를 견고하게 또 변화하게 하는가?(山河大地 誰堅誰變)

천태덕소 스님은 법안 스님의 법제자로 어려서 출가하였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54명의 선지식을 찾아뵙고 나서 법안 스님을 찾아 왔는데, 법안 스님은 덕소 스님을 한 번 보고 큰 그릇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그만 참문을 게을리하고 그저 대중에 섞여 있을 뿐이었는데 하루는 법안 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무엇이 조계의 한 방울 물입니까?”
“이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이로다.”

 

덕소 스님은 그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법안 스님에게 아뢰자 법안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뒷날 국왕의 스승이 되어 조사의 도를 크게 빛낼 것이니 내 그대만 못하다.”
그 뒤 통현봉(通玄峰)에 주석하면서 게송을 지었습니다.

통현봉 마루턱은
인간 세상 아니니
마음밖엔 법이 없다 하지만
눈에 가득 보이는 것은 푸른 산뿐일세.
(通玄峰頂 不是人間 心外無法 滿目青山)

법안 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는 “이 게송만으로도 우리 종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천태종에 희적(曦寂)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가 곧 나계(螺溪) 스님입니다. 나계 스님은 덕소 스님에게 여러 차례 부탁하였습니다.

 

“지자 대사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에 많이 유실되어 걱정이었는데 오늘날 고려에는 천태교본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스님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누가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덕소 스님은 왕에게 청하여 바다 건너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교본을 모두 베껴오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교본이 세상에 널리 전해오고 있습니다.

 

천태의 교리와 교본을 전하려 고려의 체관(諦觀) 스님이 중국에 파견된 것이 광종 11년(960년)이었습니다. 체관보다 앞서 의통(義通)이 먼저 가서 천태종 15대 나계희적(螺溪曦寂)의 법사(法嗣)가 되었습니다. 그 뒤이어 체관도 함께 나계의 법사가 되었습니다.

 

뒷날 체관, 의통이 중국에 간 이후 고려에는 천태종이 단절되었다고 대각국사 의천(義天) 스님은 통탄했습니다. 정수, 균여 등의 화엄대가들은 마침내 거세당하고 말지만 친 천태종계인 법안종은 존숭 받았습니다.

천태덕소의 법을 이은 영명연수 선사에 대해서는 <고경> 27호(2015년 7월호)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영명 스님은 『종경록』100권을 저술하였는데 해외까지 그 명성이 널리 퍼졌습니다. 고려 국왕인 광종이 스님의 어록을 읽고 사신을 보내 서신을 바치고 제자의 예를 올렸습니다. 광종은 금실로 짠 가사와 자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금조관(金操罐) 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스님 36명을 영명 선사에게 유학 보내 도를 묻게 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스님에게 인가를 받고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국으로 돌아가 제 각기 한 지방을 교화하였다고 『경덕전등록』이나 『오가정종찬』 등에 실려 있으니 고려 쪽 기록에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신라 말부터 전승되어 온 소위 구산선문(九山禪門)이 광종 중기에 와서는 주춤할 정도로 법안종 사상이 크게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영명의 제자 중에는 도봉영소(道峯靈炤), 원공지공(圓空智宗), 도봉혜거(道峯慧炬), 적연영준(寂然英俊), 진관석초(眞觀釋超) 등이 유학하여 귀국하고 광종 때에 활약한 승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종 20년 후반에 고달원(高達院), 희양원(曦陽院), 도봉원(道峯院)의 삼원(三院)을 세웠는데 모두 선종사원의 전통을 세우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삼원 중에 도봉원은 광종이 법안종을 얼마나 존숭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종 이후에는 고려 불교계의 종파적 주도권이 바뀌어 태조에서 광종 시대<918-975>에 이르는 시기에는 선종 승려가 주로 국사(國師)가 되었으나 그 이후는 교종계의 화엄종과 유가종들이 국사 또는 왕사로 책봉 받게 됩니다.

 

선종 5가의 한 종파를 이룬 법안종은 송 초의 불교를 열어주었습니다. 천태덕소는 법안의 선을 이어받은 후 천태산을 중심으로 교화를 펼쳤으며, 당말, 5대10국의 전란에서 잃어버린 천태종의 책들을 고려와 일본에서 구하여 천태교학의 재흥에 노력한 스님으로서 천태의 대가이며 세상에서 천태지자 대사의 후신이라고까지 전해 내려오는 인물입니다.

 

또 영명연수의 『종경록』100권은 종밀의 뒤를 이어 돈오돈수의 일심(一心)으로 교선일치(敎禪一致)의 체계를 완성한 것으로 확실히 당대 불교와 선의 종합적인 발전이었습니다.

 

한편, 연수 선사의 동문인 승천도원(承天道原)의 『경덕전등록』30권은 당 중기 『보림전』의 뒤를 계승하여 중국 선종의 역사와 교의를 통합한 것으로 이 책의 출현은 송 이후에 있어서 공안선(公案禪)의 발전을 결정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상과 저술로써 끼친 공적은 막대하지만 법안종은 송 초기에는 매우 성하였으나 이후 차츰 쇠퇴해서 중송 이후에는 법맥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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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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