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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오래된 미래]
불교수행법의 특징과 변천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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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7 년 3 월 [통권 제4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36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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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이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그들은 불교가 기독교처럼 단일한 종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의 불교가 아니라 여러 개의 불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상좌부불교가 있다면, 티베트 고원에는 인도대승 불교와 티베트화 된 밀교가 전승되고 있고, 동아시아는 대승불교와 선불교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다. 오랜 기간 광대한 지역에서 전승된 종교전통이므로 그 차이가 당연해보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불교 전통들 사이의 차이는 바티칸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교단과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교회, 그리고 동유럽의 그리스도정교회보다 더 컸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불교가 전파된 지역과 세월에 따른 변화, 그리고 토착문화에 따른 변형까지 다양한 원인을 추적해볼 수 있겠지만, 교리와 수행법, 그리고 종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발견되는 차이는 그것이 과연 하나의 종교인가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들은 ‘부디즘’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현하기로 결정했지만, 무엇이 진짜 불교인가에 대한 논쟁이 오늘날만 아니라 과거에도 존재했던 논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그 논쟁이 ‘복수의 부디즘’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복수의 부디즘 

 

세계화 이후, 또는 더 이른 시기로 소급한다면 2차 대전 이후,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이들 불교전통들 사이의 불일치가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전해온 불교전통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동시에 조우하게 됨에 따라 그 차이를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우월성으로 전취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불교이다. 

 

일본불교는 선불교를 일본의 문화적 전통으로 확립했고 그를 위해 중국과 한국불교를 타자화했다. 일본이 취한 전략, 즉 불교전통을 자국 브랜드화한 일은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서도 모방되었다. 그러나 일본만큼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선불교의 종주국인 중국조차 일본이 빼앗아간 선불교 독점권을 탈환하기 쉽지 않을 만큼 일본은 민첩하고 영리했던 것이다. 아무튼 일본불교가 보여준 좋지않은 선례는 그 후로 동아시아 삼국에서 불교전통을 각국의 브랜드로 전용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전통은 무엇일까? 일본과 구별되는 전통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불교계는 간화선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법으로 내세우고 그 밖의 다른 수행법, 일본의 조동선과 중국의 염불선 등등을 타자화했다. 이를 통해 한국불교는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후 한국불교는 비록 처음으로 간화선 방법을 개발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는 유일한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간화선의 세계화를 지상과제로 설정하게 된다. 그 연장선에서 남아시아의 상좌부 수행법과 티베트불교를 최상승이 아닌 것으로 타자화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소원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타자화했던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가 국내에 진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시작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열풍이 국내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남방불교뿐 아니라 티베트불교, 일본의 신종교 계열의 창가학회 등이 우후죽순처럼 범람하는 등 달갑지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간화선에 부여되었던 부동의 지위가 의심받고 있다. 시대적 증상을 치유하기 위한 방안으로 명상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화선의 탁월함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었던 “최상승”이라는 말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것, 전문수행자만 할 수 있는 어렵고 힘든 것, 그리고 시대에 뒤진 수행법이라는 딱지로 전락해 버렸다. 간화선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이 외부에서 수입된 다른 불교전통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 불교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일컬어지는 상황, 조성택 교수가 명명한 “다불교” 상황이 이제 남의 집 불구경이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것이다.

 

불교수행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이유 

 

서양에서 명상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시작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빠른 속도로 불교수행법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쉽고 편리하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심리학과 불교명상의 융합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사회적인 반향도 적지 않다. 심리치료로서의 불교는 한국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고, 심지어 이등 종교로 내려앉은 불교를 되살리기 위한 대안으로서 검토되고 있다. 

 

이제 대중의 관심은 간화선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선수행이 아니라 명상이라고 불리는 남방불교 수행법을 향하고 있다. 그동안 간간히 있어왔던 간화선과 초기불교 수행법의 비교 연구가 주로 간화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의 논의는 초기불교 중심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알고싶어 하는 것은 간화선이 ‘마인드풀니스’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라는 점이다. 그것은 논의의 기준이 ‘마인드풀니스’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변화가 불과 수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최고의 전통으로 칭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화선 전통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반증한다. 다른 한편으로 ‘마인드풀니스’의 수용이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점 또한 지적될 수 있다. 수입된 것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이 한국문화의 한 특징이긴 하지만 수행에서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초기불교 전공자들과 수행자들은 ‘마인드풀니스’야말로 부처님이 가르친 바로 그 수행법이며 현대과학에 의해 증명된 과학적 수행법이라고 자부하지만 이 또한 간화선이 최고의 수행법이라는 자부심 못지않게 위험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것이다. 

 

한국의 초기불교 전공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의 불교만 있으며 그것만이 불교라는 생각은 서구학자들이 불교를 복수로 사용할 때부터 이미 시대에 뒤진 고루한 생각으로 치부되었지만, 놀랍게도 그 사이 ‘마인드풀니스’의 현대적 적용을 시도했던 미국에서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제 비로소 불교명상에 대한 더 진지하고 사려깊은 논의들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미국불교의 성숙을 의미한다. 또한 한때 퇴물로 취급되었던 선불교에 대한 새로운 조명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문화의 대중문화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학자들과 수행자들의 진지한 노력, 그리고 다양한 불교가 만나고 융합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균형 잡힌 관점의 형성이 그와 같은 반성을 이끌어낸 힘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다른 불교전통이 혼재하는 한국에서도 그들 사이의 각축이 아니라 진지한 소통과 융합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단지 어떤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한계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말이다. 

 

이 시대에 계속 간화선을 주장하는 것은 외로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골동품이라고 해서 내 집 안의 보물을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그 가치를 알아줄 것인가. 그마저 잃어버린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외로움을 감내하며 우리가 전승해온 전통들을 돌아보고 객관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가 실천해온 수행법들이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살펴봄으로써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이루어진 초기불교와 간화선의 비교 연구와 달리,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교 수행법 각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각 수행법의 특징과 한계도 가감 없이 고찰해보려고 한다. 천학비재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 과제를 스스로 떠맡는 까닭은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 불교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 사이에서 우리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선택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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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10년간 강사로서 학인을 지도했다. 경전 연찬을 하는 틈틈이 제방에서 정진했으며, 서울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상, 불교를 강의해오고 있다. 2016년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맡아 운영한다. 새로운 형식의 불교모임인 무빙템플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은유와 마음』,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무지한 스승으로서의 선사」, 「『선문염송』의 글쓰기-정통과 민족적 정체성의 지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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