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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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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5 년 10 월 [통권 제3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0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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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언설 가운데 하나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는 충고다. 지나간 것을 후회하지 말고 다가올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읽힌다. 분명 힘이 되는 말인데, 자꾸만 잊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엄밀히 생각하면 이는 어리석거나 끈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원하며 그래야만 생존이 원활한 법이다. 어제 먹은 밥은 어제에만 기여할 따름이다. 또한 어느 큰스님은 “과거는 기억일뿐이고 미래는 상상일 뿐이니 자유로워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현재 역시 감각일 뿐이라는 의심.

 

불교에서는 삼세(三世)라 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묶음으로 처리했다. 셋은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서 현재만 따로 떼어낼 수 없다. 마음이 곧 현실이요 세계이며 몸은 죽어도 마음은 남는다. 억겁의 윤회를 거듭해 온 내 마음은 우주와 같이 넓고 혼곤하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심리적 비약과 붕괴를 반복해야 하는 게 현존재의 숙명이다. 결론적으로 과거를 그런대로 견딜 만하게 치유해내고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태도만이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다. 수행은 단순히 잊음이 아니라, 잊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제28칙
호국의 세 차례 웃음거리(護國三麽, 호국삼마)

 

※ 마(麽)는 본래 ‘마음 심 변(忄)’이 붙은 글자이나 한글 프로그램에 맞는 한자가 없어 부득불 이대로 올림.

누군가 호국수징(護國守澄)에게 물었다. “학이 마른 소나무 끝에 섰을 땐 어떻습니까?” 호국이 답했다. “땅에 있는 이에게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물방울이 꽁꽁 얼었을 때는 어떠하냐.”는 질문이 다시 들어왔다. “해 돋은 뒤에 보면 또한 한바탕 웃음거리겠지.” 마지막 물음. “회창(會昌)년간, 불법이 유린당할 때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은 죄다 어디로 갔더란 말입니까?” “삼문(三門) 어귀에 두 금강신의 얼굴이 한바탕 웃음거리니라.”

중국의 고대사에는 네 차례에 걸쳐 불교가 국가권력에 의해 박해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法難). 이름에 ‘무(武)’가 들어가는 3인의 황제와 ‘종(宗)’이 들어가는 1인의 황제가 자행했다. 북위(北魏)의 태무제(446년), 북주(北周)의 무제(574년), 당(唐)의 무종(842년), 후주(後周)의 세종(955년)이 장본인이다. 이 가운데 무종(武宗)의 핍박이 가장 엄혹했다고 전한다. 4600곳의 절이 폐사됐고 26만 명의 승려가 환속해야 했다. 서기 842년부터 847년까지 5년간이며, 그즈음의 연호(年號)가 회창이었다.

 

법난이 발발한 시기는 제각각이나, 일어나게 된 원인은 대동소이하다. 불교의 지나친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시주로 돈을 모으고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불린 사원경제는 나날이 비대해졌다. 돈이 된다 싶으면 술도 팔았고 매춘부도 부렸다. 납세와 병역을 피할 요량으로 출가하는 사내들 또한 넘쳐났다. 승가의 부패와 타락도 문제였으나, 무엇보다 나라의 재정을 축내고 국력을 위협하니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당시의 황제들이 불교와 경쟁했던 도교를 좋아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여하튼 교단이 무너지고 부처님이 능욕을 당했으니 많은 불자들이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호법선신 운운하는 승려의 물음엔 뼈가 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신들에 대한 원망이다. 삼문은 절의 입구인 일주문을 비롯해 사천왕문과 금강문, 불이문과 해탈문을 가리킨다. 추상적으로는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을 뜻하며 문들을 거치면서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비우고 바로 보는 것이다. 눈을 반쯤 뜬 불상은 쇠붙이요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은 나뭇조각에 불과하다. 허상(虛像)은 무능하며 기껏해야 아름다울 뿐이다. 한편 농사를 통한 자급자족을 견지 하던 선종(禪宗)은 법난에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불사의 공덕을 들먹이며 백성들로부터 ‘삥’을 뜯지 않은 과보다.

 

‘웃음거리’란 결국 부질없는 것을 의미한다. 한밤의 찬 기운에 얼어버린 물도, 날이 밝으면 속절없이 녹게 마련이다. 나뭇가지에서 외줄을 타는 학의 자태와 재능 역시, 상식적인 관점에선 달밤의 체조요 한낮의 ‘쌩쑈’다. 인생은 무상하며, ‘잘 나가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위태롭다. 높이 오른 새가 멀리 본다손, 떨어졌을 때 더 아픈 법이다. 세월이 흘러서 허물어지는 것들은 서럽고, 혼자만 옳다고 우기는 것들은 역겹다. 그러므로 관건은 풍화와 굴욕을 흔연히 받아들이는 일. 설령 웃음거리를 보더라도 심지어 되더라도, ‘웃음’과 ‘거리’를 두는 일.

 

제29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풍혈철우)

 

풍혈연소(風穴延沼)가 영주(郢州) 관아에 초청돼 법문을 했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무쇠소의 선기(禪機)와 같아서 도장을 찍고 그 도장을 치우면 찍은 자리가 나타나지만, 찍은 채로 놔두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장을 찍은 채 그대로 놔둔다면 찍는 게 옳은가, 찍지 않는 게 옳은가?” 이때 노피(盧陂)라는 장로가 나서서 말했다. “저에게는 무쇠소의 선기가 있으니 새삼스레 스승의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풍혈은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했거늘, 되레 개구리가 휘젓고 다니며 물을 흐리니 딱하구나.”라고 힐난했다. 노피가 머뭇거리자 풍혈은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노피가 궁리 끝에 한마디 하려하자 풍혈은 불자(拂子)로 노피를 때리면서 일렀다. “오늘의 화두를 알겠는가? 말해보라.” 노피가 입을 떼려 하자 다시 불자로 내리쳤다. 이를 지켜보던 목주(牧主)가 말했다. “불법이나 왕법이나 비슷하군요.” 풍혈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목주는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풍혈은 못이기는 척 법좌에서 내려왔다.

 

 




육질의 등급을 표시할 목적으로 고기에 낙인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심인’이란 도장이 찍힌 마음이다. 품질을 보증한다는 취지인데, 결국 깨달았다는 인증인 셈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게 마음이므로, 심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치 날인한 뒤 도장을 치우지 않은 상태처럼, 어떤 모양으로 찍혔는지 과연 찍히기나 했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이렇듯 심인은 분별과 시비의 영역을 초월해 있다.

 

 

무심(無心)을 설명할 때 으레 무쇠소의 비유를 든다. 이른바 에고(Ego)가 없는 마음이며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다. 불자(拂子)는 총채처럼 생긴 물건인데, 번뇌를 털어낸다는 상징을 지닌다. 풍혈이 노피를 쥐 잡듯 몰아붙이는 이유는, 그가 심인을 가지고 사기를 치려했기 때문이다. 심인을 이해한다는 건, 심인 그 자체가 아니라 심인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스승의 ‘인감증명’을 노린 기만이요 위선이다.

 

풍혈의 심인은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심인을 계승했다. “어떤 것이 제일구(第一句)냐.”는 질문에 임제는 “도장이 종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 붉은 글씨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행위는 했으나 자취는 없는 이것이 바로 법(法)이다. 주객(主客)이 나눠지기 이전의 소식이며 무생(無生)의 경지다.
노피의 허세는 이를 말 많고 냄새나는 생의 구렁텅이로 추락시킨 격이다. ‘부처님의 몇 세손(世孫)’ 운운하는 풍토가 이와 같다.

 

심인은 비밀스럽다는 점에서 정치에 훼손되기 쉽다. 심인이 권력이 되는 순간, 심인은 도장이 찍힌 고깃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걸 몇 점이라도 뜯어먹겠다고 온갖 노피들이 나서서 판을 벌이고 세(勢)를 모은다. 목주(牧主)는 영주(郢州)의 행정장관을 가리키는데, 영민한데다 국가관이 투철한 벼슬아치다. 그는 망상을 일깨우고자 혼쭐을 내는 풍혈의 ‘닦달’에서, 엄격하고 신속하게 뒷말과 꿍꿍이를 진압하는 법치(法治)를 봤다. 우물쭈물했다가는 되치기를 당할 테니까. ‘심인’의 근처에도 못 갈 놈이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심인이라 떠들 테니까.

 

어쩌면 무심보다 어려운 게 공심(公心)이다. 내 마음만이 아니라 남의 마음마저 흔들리지 않게 하는 능력인 까닭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깨달아지는 건 아니다. 결국 조직은 총명한 사람보다는 공명한 사람이 다스려야 바람직하다. 문제없는 사회란 없다. 그러나 문제가 적은 사회는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서로 덜 먹게 하고 좀 더 일하게 한다. 심인은 상서로우나, 심인보다 이로운 게 인심(仁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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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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