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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향적불국(香積佛國)의 향기 나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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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6 년 7 월 [통권 제3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18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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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24권-8판(188쪽)에는 ‘일심진여의 다함없는 이치’라는 제목 아래 향적불국(香積佛國)의 향반(香飯), 곧 ‘향기 나는 밥’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는 『유마경』 「향적불품(香積佛品)」에 나오는 얘기인데, 연수 스님이 이 『유마경』의 ‘향기 나는 밥’을 불법(佛法)과 연결시켜 놓고 있다. 『유마경』 얘기에 앞서 밥[食]에 대한 불교도들의 사유를 잠깐 살펴보자. 

 

네 가지 밥[四食] 

 

불교도들은 아주 초기에서부터 밥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여기서 밥이란 중생을 길러주는 물질적 정신적 음식을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네 가지 밥 가운데 첫째는 단식(段食)으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전형적인 음식을 가리킨다. 국수 같은 것을 잘게 씹어 먹는 것처럼, 우리 입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뱃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단식’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촉식(觸食)으로, 감촉을 통해 기쁨을 느껴 몸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가령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몰두하면 몇 끼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는 것이나, 새들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서 그 속의 새끼들이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셋째는 사식(思食)으로, 일종의 의지 혹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거북이는 뭍에 올라와 알을 낳은 뒤 바다로 돌아가 버리지만, 모래 속에 남은 알들은 어미를 생각하며 잊지않기 때문에 그 알들이 썩지 않고 부화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한 책을 정신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처럼,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을 길러주는 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식식(識食)인데, 앞의 세 가지 밥을 통해 우리의 정신[識]이 유지되어 우리의 목숨이 굳건히 지켜지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불교의 논사들은 이런 네 가지 밥을 삼계(三界)나 오취(五趣)에 적용시켜 분류하기도 하였다. 즉 욕심에 매어 있는 세계인 욕계(欲界)의 중생들은 위의 네 가지 밥 가운데 ‘단식’을 위주로 삼는 반면, 욕심을 여읜 세계인 색계(色界)의 중생들은 ‘단식’ 대신 나머지 세 가지 밥을 먹으며 살되 ‘촉식’을 위주로 삼는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밥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보면, 욕계에 사는 우리로서는 살아가는 데 있어 꼭꼭 씹어 먹는 밥이 필수적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좋은 의지와 좋은 생각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길러가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유마경』의 향기 나는 밥 

 

불교의 초기에서부터 내려오던 밥에 대한 사유는 대승의 경전에 이르면 보다 다양하게 전개된다. 대표적인 대승 경전인 『유마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이 사바(娑婆) 세계로부터 42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를 지난 뒤 나오는 중향국(衆香國)과 그곳에 계시는 향적(香積) 여래가 등장한다. ‘향(香)’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향적 여래가 계시는 국토는 오직 향기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향기로써 밥을 먹는 곳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바세계가 언어와 문자로 의사소통하고, 쌀이나 밀가루로 밥을 지어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향적 여래께서 드시는 향기 나는 밥은 무엇을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가? 『유마경』에서는 ‘여래의 감로 맛의 밥은 큰 자비로 향기를 피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저 세계의 향기 나는 밥은 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지닌 큰 자비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유마 거사는 향적 여래께서 드시던 이 향기 나는 밥을 조금 덜어서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로 갖고 와 8만 4천의 대중에게 공양했는데, 이 때 대중 가운데 있던 성문(聲聞)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의심을 일으켰다고 한다. “가져온 밥이 너무 적은데, 대중들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유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해주고 있다.

 

“성문의 작은 덕과 작은 지혜로 여래의 한량없는 복과 지혜를 헤아리지 마라. 사해(四海)가 다 사라지더라도 이 밥은 다 하지 않느니라. 일체 사람을 다 먹게 하더라도 마치 수미산과 같아서 1겁에 이를지라도 오히려 다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다함이 없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공덕을 구족한 부처님께서 먹고 남긴 것은 끝내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향적 여래께서 공양한 뒤 남은 향기 나는 밥은 중생들이 아무리 먹어도 바닥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밥이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향을 다 갖춘 부처님의 공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계·정·혜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오분향예불문(五分香禮佛文)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계 등에 ‘향’을 붙인 것은 계 등을 잘 지키는 사람의 행위가 마치 좋은 향기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항목에 있어 가장 훌륭한 경지를 증득하신 부처님은 그 누구보다도 더한 향기를 갖고 계시므로, 그러한 부처님으로부터 일어난 갖가지 것들 역시 무한광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심진여의 다함없는 이치 

 

연수 스님이 보기에는 향적 여래께서 드시는 ‘향기 나는 밥’은 바로 여래의 청정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더 나아가 여래의 청정한 행위는 중생과 부처의 바탕이 되는 ‘일심’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명추회요』 188쪽의 내용은 ‘향기 나는 밥’이 바로 깨달은 마음의 한 측면임을 드러내려는 데 목적이 있다.

 

향적불국(香積佛國)의 향반(香飯)을 『경(經)』에서는 “다함이 없는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공덕을 갖춘 사람이 먹다 남긴 것으로 끝내 없어질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일심진여(一心眞如)의 다함이 없는 이치와 5분법신(五分法身)의 훈습한 공덕과 자체의 성품이 공하고 작위가 없는 오묘한 작용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연수 스님은 『경』에서 설해진 ‘향기 나는 밥’의 무한함을 ‘우리 마음의 이치가 다함없음’에 견주고 있다. 이처럼 『경』에서 설해진 갖가지 내용들을 모두 우리 마음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은 연수 스님의 일관된 불전 해석 방법론이다. 연수 스님이 이런 방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불전의 내용을 ‘자기화’ 하려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 할지라도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별로 쓸모가 없는 것처럼, 불전의 말씀을 자기 문제로 삼아서 되씹어 보라는 것이 연수 스님의 간곡한 제안인 셈이다. 그렇다면 ‘향기 나는 밥’은 어떻게 소화되는가? 『명추회요』에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또 “이 밥을 먹는 자는 대승의 뜻을 일으키며 나아가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른 후에야 소화가 된다. 마치 약을 먹어 독을 치료하면 독이 소멸해야 약도 소화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모든 대보살(大菩薩)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금생을 버리고 다시 후생을 받는다 하더라도 다음 몸의 식(識) 속에 종자(種子)가 있다. 종자가 연(緣)을 만나면 다시 향반이 생겨나므로 상속하며 단절되지 않다가 초지(初地)에 흘러 다다르면 무루심(無漏心)을 일으킨다. 미혹을 끊고 진여를 증득하는 것을 소화라 하지 음식이 없어지는 것을 소화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이 향반을 먹은 자가 무엇인들 소화시키지 못하겠는가.

 

미혹을 끊고 진여를 증득하려는 수행의 과정을 우리가 매일 지어서 먹고 소화시키는 밥의 비유를 통해 한번 되새김질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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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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