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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누룽지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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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옥  /  1996 년 3 월 [통권 제1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6,53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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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옥(대법엄)

 

부처님 말씀에 탐(貪)․진(嗔)․치(癡) 삼독이 성불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하셨는데, 이 삼독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지녔고 그래서 결점 또한 가장 많은 위인이 이 보살이다. 그러니 평소 신심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천명(至天命)의 시기도 한참 지나서인 1987년 12월 31일(음력 11월 11일), 나는 큰스님을 처음으로 친견하게 되었다. 부산에 계신 사돈 할머니 반야행 보살님의 인연으로 백련암을 알게 되었고, 마산 참회원 점안식(87년 3월 23일)에 참가하는 인연을 기점으로 칠일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를 올리며 일년 가까이 참회원에서 절 연습을 하고 다른 신도님들과 함께 버스 두 대에 몸을 싣고 백련암으로 삼천 배를 하러 갔다.

 

저녁 공양 때 도착하여 마당에 계신 큰스님을 친견하게 되었는데, 무섭기는 커녕 마치 전생의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 함께 간 본각성 보살에게 “우리 아버지 같다,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를 연발했다. 얼마나 좋았던지 힘이 들어 쩔쩔매면서도 밤을 꼬박 새워 사천사백 배를 했다. 잠을 자고 있는 보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절을 마치고는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백련암 마당을 신이 나서 마구 돌아다녔다. 그토록 아름답고 성스러운 밤은 내 평생에 처음이었다.

 

이렇게 해서 백련암 문전을 사흘이 멀다 하고 드나들었다. 늦게 닿은 큰스님과의 인연을 안타까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뵈어야겠다고 원을 세우고 창원에서 백련암까지 두 시간 반 거리를 달려갔다. 혹시라도 보행차 나오신 큰스님을 친견하게 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혹 나오시지 않으면 풀이 죽어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리곤 했다.

 

그리고 마침, 그때부터 출간이 시작된 선림고경총서와 큰스님법어집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95년 초까지 혼자서 200여 질을 보급하였으니 전국에 수백 명의 독자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는 동안 미움도 오해도 많이 샀다. 심지어 180도 돌았다는 비난도 듣고……. 그러나 그 일이 얼마나 신바람 났던지! 아마 그게 초발심이었던 것 같다. 삼배가 고작이었던 내가 한 달에 첫째, 셋쨋 주 삼천 배, 일년에 네 번 아비라기도에 참가하였으니, 나의 인생행로 가운데 87년부터 큰스님이 떠나시던 93년까지의 신앙생활은 충실 그대로였다.

 

먹물 옷을 입은 스님네들의 모습이 그지없이 좋았고, 절집 향 내음이 나의 영혼을 맑혀 주는 것 같았다. 눈만 뜨면 “부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물론 백련에 인연이 닿을 때쯤, 나에게도 인생의 큰 고비가 닥쳐왔고, 내 힘으로는 나 자신을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처지였다. 그때 만일 큰스님과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무튼 나는 수년간 많이 변했다.

 

그리고 88년 백중 아비라기도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21회를 해냈다. 5년을 무사히 한 것이니 다시 말해서 이제 5학년을 마치고 6학년에 진학한 셈이다. 또한 이번 여름에는 적광전에서 어렵게 자리 잡은 덕분으로 ‘죽비특별보좌관’이라는 벼슬(?)을 하나 얻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1분이라도 죽비가 늦어지면 따가운 눈총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스스로의 기도도 힘든데 죽비 치는 시간까지 신경을 쓰자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무사히 해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나를 추슬러 보면, 신앙에 소질을 타고 나지 못한 모양이다. ‘삼천 배’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고, ‘아비라’ 생각하면 겁부터 난다. 지난 93년 미국 가는 길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속에서 백팔염주를 돌리며 열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능엄주 독송을 했다. 곁에 있던 처사가 참 어지간하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몇 년만 지나면 고희가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부디 부처님 잊지 않고 열심히 닦으리라 다짐한다. 십년만 더 빨리 큰스님을 친견했던들, 마음의 때를 더 많이 벗겨냈을텐데….

 

“너 누룽지 먹네, 많이 먹으라이.”
처음 삼천배를 했을 때, 너무 힘이 들어 큰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쩔쩔매는 꼴이 무척이나 불쌍했던지 그 다음날 새벽 공양 때 누룽지로 목을 적시는 이 못난 보살에게 던지신 큰스님의 첫 말씀이었다. 지금도 큰스님의 따뜻한 그 말씀이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러 보살님들! 부지런히 갈고 닦아 성불하소서. 정법 만나기 어렵고, 큰 스승 만나기 어렵고, 좋은 도반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우리 백련암 보살들은 이 세 가지를 다 얻지 않았습니까. 복으로 생각하시고 열심히 갈고 닦읍시다.

 

일천구백구십오년 팔월에

경남 창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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