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원택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1월24일 부산 감로사 팔엽전에서 은사와 노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원택(왼쪽)스님과 혜총스님. |
“제가 40년 시봉한 자운 노스님과
성철스님은 숙질간이지만
‘한 몸’ 같은 평생 도반
법 가르치고 따르는 데는
참으로 서릿발 같은 분
공부를 어떻게 할지
궁금해 하는 저에게
‘마음 챙기면 되는 거야,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존경해야 한다’…
책 보지 말라는 것은
팔만대장경 모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자상하게 일러 주셔”
“어서 오십시오. 나를 이렇게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자 어서 들어가십시다.” 마당에 나와서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아주시는 혜총(慧聰)스님. 스님의 안내로 팔엽전(捌葉殿)에 들어갔다. 부산 서면 감로사(甘露寺) 큰법당 오른쪽에 팔엽전이 있다. 혜총스님은 방에 들어서자 “자, 우리 자운 큰스님께서 원불로 모셨던 저 부처님께 예배하십시다” 했다.
출입문 맞은편에 작은 좌불이 모셔져 있다. “자운(慈雲) 큰스님의 원불(願佛)이십니다” 혜총스님이 일러주셨다. 혜총스님은 우리 일행을 앉게 하고서 손수 차를 내 오셨다. 시자도 부르지 않았다.
“이 방이 자운 큰스님께서 계시던 방입니다. 여기서 열반 하셨지요. 나는 어른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하루도 이 방에서 자지 않았습니다. 책 볼 때는 이 방에 왔지요. 당신께서는 이 방에 당신이 보시는 책을 두셨어요. 책을 참 많이 보셨습니다. 나도 그 어른처럼 책을 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모자랍니다.” 혜총스님은 또 “이 책상 그리고 저 시계랑 텔레비전도 어른께서 사용하시던 것 그대로입니다. 벌써 당신께서 열반하신지 20년이 넘지만 그냥 그대로 내가 쓰고 있습니다.”
혜총스님은 “나는 11살에 절에 와서 자운 큰스님을 40년 시봉한 것 이외에는 내세울 거라곤 없는 사람”이라며 겸손해 했다.
혜총스님은 자운 큰스님의 손상좌다. 은사는 보경스님이다. 그런데도 스님은 자운 큰스님의 어느 상좌보다도 더 오래 자운 큰스님을 시봉했다. 그런 연유에서 “나는 그 어른을 40년 시봉한 것 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한 스승을 40년 시봉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수행자들은 익히 안다. 또한 그 일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님도 안다. 혜총스님은 그렇듯 어른 시봉을 한 스님이다.
자운.성철 두 큰 어른은 집안으로 따지면 숙질간이다. 자운 큰스님이 성철 큰스님보다 윗분이다. 그런데도 두 분께서는 당대 우리 불교계의 선지식으로, 또한 평생도반으로 살아오셨다. 오늘 이 자리는 두 분 큰 어른의 평생도반으로서의 인연과 살아오신 날들 그리고 그 어른들께서 남긴 언행들을 되새기는 자리여서 그 의미가 큰 자리였다.
혜총스님은 “나는 성철 큰스님께서 상좌 복이 참 많은 어른이라 생각합니다. 당신 상좌들은 제각기 스승의 뜻을 따라 열심히 수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스승의 법을 널리 펴고 수행정신을 기리는 불사를 벌이고 있으니 나로서는 부럽고 그런 상좌 스님들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 1월24일 혜총스님을 뵌 우리 일행은 작은 체구에 맑은 얼굴, 고희를 맞은 어른 같지 않은, 동안(童顔)을 지닌 스님을 모시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 스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40년을 어른 모신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자운 큰스님과 평생도반으로 지낸 저희(성철)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서 어느 스님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실 분이지 않습니까. 오늘 봬온 자리에서 저희들과 후학들을 위해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지관 큰스님(전 총무원장, 혜총스님의 사숙)이 계셨으면 나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셨을 텐데…. 이렇게 나를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불자님들 중에는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성철 큰스님은 엄하고 무서운 분이라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들에 동감하면서도 내 나름으로 성철 큰스님을 말씀드린다면 몇 마디 할 말이 있습니다. 성철스님은 법에 있어서, 법을 가르치고 따르는 데는 참으로 서릿발 같은 분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어린 아이같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면도 보이신 분입니다. 또한 성철 큰스님은 그 어느 어른들보다 책을 많이 보시고 경학에 통달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큰스님께서 참선수행을 주창하시니 그 어른께서 참선만 내세우신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선.교.율에 걸쳐 깊고 넓은 혜안을 지닌 분이십니다.”
- 그러신 데도 어린아이 같은 면을 보이셨다는 말씀은?
“예, 내가 어려서 출가하여 자운 큰스님 모시고 성철 큰스님을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두 분 큰스님이 만나실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나는 성철 큰스님과 씨름도 많이 했습니다. ‘니 내하고 씨름 한판 하자. 이리 온나(오너라). 이놈 봐라. 이놈아가 내보다 힘이 더 세데이’ 하시면서 나를 귀여워 해주셨어요. 그때 그분은 정말 어린애 같았지요.”
- 법에 대해서 뭐 물어보신 것 없습니까?
“공부하면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자주 여쭤보긴 했지만 다 말씀 드릴 수 없고 이 말씀만은 기억에 깊이 남아 있어 말씀 드리려 합니다. 어느 날 ‘스님,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마음 챙기면 되는 거야.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존경해야 해’ 하셨어요. 그때는 당신 말씀의 뜻을 몰랐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그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지요. 성철 큰스님께서는 중도사상을 주창하시지 않았습니까. ‘중도’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가 융통하는 것 아닙니까. 대통합이 중도라고 나는 이해합니다.”
- 노장님(성철 큰스님)께서 책 많이 보시는데 대해서도 스님께서 한 말씀하셨다면서요.
“아하, 그 이야기 말입니까. 어느 날 내가 성철 큰스님께 이렇게 말했지요. ‘스님, 스님께서는 책은 그렇게 많이 보시면서 왜 수행자들에게는 책 보지 말라고 하십니까.’ 했지요. 그러니까 큰스님께서는 ‘허허 이놈 봐라. 니가 내한테 잔소리 하는기가? 중생들은 책 보라고 하면 책에 집착해서 바른 길을 못 봐.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모두 손가락만 본단 말이야. 팔만대장경 모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줄 알아야 해. 달을 보라면 달을 봐야지’ 하셨어요.”
- 노장님께서 스님께 또 하신 말씀 기억나시면….
“‘혜총아, 니 이름 누가 지어준 줄 아나? 느거 스님이제. 니는 구정(九鼎)선사야.’ ‘예? 잘 모르겠습니다’ ‘야 이놈아, 살아보면 알아. 나는 느거 스님이 훌륭한 스님이니 느거 스님 뜻에 따라 살아라’ 하셨지요. 나는 성철 큰스님의 말씀도 그러셨지만 이날까지 자운 노스님의 말씀대로 살아왔습니다. 법신진언(‘옴 아비라 훔 캄 스비하’)기도.능엄주(대불정능엄신주) 백팔참회 등 모두 했지요. 두 어른께서 뜻을 같이하여 감로사에 국내 사찰로서는 처음으로 참회도량을 건립했고 초하루법회를 연 것도 국내최초였지요. 6.25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 시작,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두 분 어른의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 스님께서 자운.성철 두 큰 어른의 평생도반으로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후학을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두 분은 도반이라기보다 한 몸이셨어요. 둘이 아니었어요. 뜻도 공유했고 행(行)도 공유했어요. 요즘 와서는 어른들이 보여주신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지요. 당대의 어른이신 자운.운허.영암.향곡.청담 큰스님들과 성철 큰스님 등 당신들 모두가 우리불교의 앞날을 걱정하시고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을 남기셨지요. 선대 어른들의 언행에서 후학들은 큰 가르침을 깨우치고 스스로를 다그쳐 그 어른들 못지않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혜총스님은…
1943년 경남 통영 출생. 1953년 통도사로 출가, 그해 보경스님을 은사,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4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 같은 해 지효스님에게 건당, 통도사 동화사 해인사 선암사 범어사 등 선원에서 9안거를 성만했다.
1979년 부산불교연합회 창립 발기인, 사무총장, 상근 부회장, 1990년 <대한불교> 창간 발기인.발행인.편집인. 1993년 전국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용호복지관장을 역임했다. 1998년 지관스님으로부터 전강.전계. 해인사승가대학, 범어사승가대학, 동국대불교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 해인사승가대와 동국대석림동문회장, 조계종 포교원장 등을 지냈다. 실상문학상을 제정.운영위원장, 복지법인 불국토 대표이사로 부산 감로사에 주석하고 있다. 포교대상 공로상. 조계종 종정상. 국민훈장.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법어집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새벽같이 깨어있으라> <공양 올리는 마음> 등 다수 저서가 있다.
[불교신문 2888호/2013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