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불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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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翁性徹 SUNGCHOL

사리탑

백련불교문화재단

  • 사리탑
  • 1993년 11월 4일, 퇴옹당 성철 큰스님께서는 1967년 해인총림으로 주석처를 옮기신 후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신 퇴설당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 다비식이 있기까지 일주일 내내 해인사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장엄하게 다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다비식이 끝난 후, 스님께서 훌훌 털어버린 육신의 자리에는 영롱한 빛으로 빛나는 사리가 무수히 출현하여 다시 한 번 큰스님의 크고 깊은 법력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철스님문도회는 스님의 사리탑을 건립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문화재위원님들의 의견을 듣고, 오늘날의 조형언어로서 우리 시대의 사찰문화를 대표할 만한 사리탑을 만들어 후대에 전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1994년 12월 19일, 신문 공고를 통해 사리탑 설계를 현상공모하였습니다. 절 집안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계공모 결과 만족할 만한 당선작이 나오지 않아 대단히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문도회는 사리탑 심사에 참석하셨던 심사위원 중 몇 분을 ‘사리탑자문위원’으로 모시고 심사숙고를 하면서 방향을 모색하던 중, 삼성의료원 영안실 앞마당에 설치된 ‘시간의 방향’이라는 테마의 조형물을 만든 작가 최재은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이미 국내외에서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업으로 높은 지지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였습니다. 문도회는 이 분이라면 전통의 요소를 살리되 이 시대의 문화를 표현해 낼 수 있는 큰스님의 사리탑을 설계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져 큰스님 사리탑 설계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설치미술가로 활동하던 최재은(崔在銀) 씨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리탑자문위원회와의 수차에 걸친 토의를 거치며, 1998년 11월 8일, 큰스님 열반 5주기를 맞이하여 해인사 입구 운양대(雲陽臺)에 완성하였습니다.
성철스님의 사리탑은 우선 사리탑 설계를 첨단 설치 미술가에게 맡긴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또한 이번에 발표한 작품이 지금까지 사찰에서 보아온 사리탑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도회가 사리탑 건립을 발원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큰스님께서 우리 시대의 부처로 불렸던 만큼 과거의 양식을 답습하지 말고 이 시대 조형언어로써 전통과 시대정신, 불교가 하나로 만나는 새로운 형식의 사리탑과 사찰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견에 도달하고 거기에 뛰어난 작가의 작품성이 만나 이루어진 것입니다.




  • 작가의 말
  • 작가의 말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작업의 의미 / 최재은(작가)
  •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이미지를 얻기 위해 큰스님의 올곧은 수행과 청빈한 삶, 그리고 중생을 향한 자비 실현의 정신세계에 감히 접근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긴 시간을 가지고 스님의 세계를 느끼려 노력한 과정 속에서 그 어떠한 설명도 필요치 않는 무언(無言)의 형태를 그 분으로부터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거대한 결정체와도 같은 청결한 원(圓)이라는 형태이었다. 이 원들은 서로의식하며 이동․공존하는 과정과도 같은 것으로, 즉 영원한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을 작업으로 실현하기에는 다행히도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계획장소가 가야산의 소우주와도 같은 아늑하고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이런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에 큰스님을 위한 사리탑 이미지안을 계획하게 되었다.


사리탑 외부 둘레는 지형적 조건상 자연적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분리된다. 사리탑은 상단의 중심에서 약간 어긋난 위치에 두고, 그 주위에 원형좌대를 설치하여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리탑을 구성하고 있는 부도와 기단은 서로 안정된 분위기를 갖도록 하였으며, 주위의 원형좌대와 긴장관계를 동적으로 표현했다.
사리탑의 핵심을 이루는 부도는 약간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반구 위에 하나의 구가 놓이는데, 이 구는 매우 정적이면서도 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였다. 외부의 상단 및 하단 바닥, 원형좌대, 부도는 원의 평면과 입체적 형태로 정리했고, 정면 입구에서 중앙계단에 이르는 흐름과 기단은 직선으로 처리해 원의 형태와의 관계를 조화시켰다.
이와 같이 정리된 전체적인 구성의 특징은, 전통적인 부도의 형태를 응용하되 거대한 상징성을 탈피하였고, 올곧은 수행과 청정한 삶으로 일관하신 큰스님의 정신세계를 보다 가깝게 느껴지도록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 사리탑자문위원의 의견
  • 사리탑자문위원의 의견
    큰스님의 사상과 그 시대 문화가 만나는 사리탑이어야 한다 / 김동현(국립문화재연구소장)
  • 우리나라는 부도(浮屠, 사리탑)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도가 남아 있다.
    부도는 훌륭하셨던 스님들의 묘탑(墓塔)이다.

이 묘탑은 묘(墓) 그 자체인 동시에 그 조성 당시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해 주는 하나의 기념물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각각 여러 시기에 조성된 묘탑들은 시대적인 조형사상(造形思想)이 반영되어 있고, 각기(各己)의 묘탑 주체인 스님의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성철 큰스님의 부도에도 그러한 외면성(外面性)과 내면성(內面性)이 깃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부도는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범주에서 맴돌게 되면 결국 성철 큰스님의 사상과 이 시대적 조형감각이 내포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의 성철 큰스님의 부도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평면(平面) 구성은 방(方)과 원(圓)의 결합체(結合體)이며, 핵심(核心)은 원에 두었고, 핵심인 원으로부터 방으로의 확산 전개는 단순하면서도 만다라적(曼茶羅的) 구상이 내포되어 정지(靜止) 상태에서 유동적(流動的) 공간에로의 의미 부여가 잠재(潛在)되어 있다.
입면상(立面上)으로는 공간의 서열이 분명하며 허(虛, 空․淸空․空靈․無)와 같으면서도 실(實)이 있어 공허(空虛)하면서도 내실(內實)이 있는 조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직선과 원, 구, 호의 절묘한 조화 / 정영호(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장, 문화체육부 문화재위원) 스님들의 사리탑 건립은 법제문도(法弟門徒)가 선사(先師)를 길이 현창하기 위하여 석재(石材)로써 건조하였던 것이니, 우리나라는 선종(禪宗)이 들어와 일종일파(一宗一派) 사자상전(師資相傳)의 법문(法門)이 확정되면서 이루어졌는데, 그 시기가 통일신라 시대이다. 그러므로 각 선문(禪門)에서 고승대덕의 사리탑 건조는 당시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성철 큰스님은 금세기 후반에 있어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위대한 큰 스님이었으니, 사리탑 또한 구래(舊來)의 보편적인 작풍에서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우선 건립 장소가 다시 없는 좋은 자리이니, 그 설계 또한 절묘의 작풍을 보일 기본이어야 한다.
기단부에 있어서 낮은 지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높직하고 낮은 2단의 기단을 구성하여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상단 중심에 원호형(圓弧形)의 괴임과 받침석을 호선(弧線)에서 접하게 하고 정상에 큼직한 원구석(圓球石) 하나를 놓았다. 괴임석은 밑바닥이 평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받침석은 상면이 평평하여 원구석을 안치해도 안정감이 있다. 다만 괴임과 받침석이 원호면에서 접하고 있어 불안할 것 같으나 그 위의 큼직한 원구석의 중심이 그 밑의 상․하 받침석과 괴임석 중심에 놓여 있어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직선과 각(角), 원호(圓弧)와 원구(圓球) 등이 잘 조화된 기발한 착상의 설계도라 하겠다. 지하에 사리를 봉안하되 8각(八角)의 사리장치를 안치함은 미타정토(彌陀淨土)로 고인의 사리가 귀의(歸依)하는 당처(堂處)가 마련된 부도탑 건립의 본의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 불교적 상징성이 살아 숨쉬는 사리탑
  • 불교적 상징성이 살아 숨쉬는 사리탑
    홍윤식(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장)
  • 성철 큰스님은 생전에는 높으신 수행력으로 범부중생에게 크나큰 교화력과 구제력을 미치셨고, 열반에 드신 이후에는 역대 어느 고승보다도 영롱한 사리를 더욱 많이 남겨 불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인들로 하여금 수행의 높은 덕이 영원한 생명체의 상징으로 남게 되는 것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셨다.

사리란 높은 수행력의 결정체라 인식되어 성스러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고, 따라서 그것을 봉안하는 사리 장엄구와 부도의 조형화가 일찍부터 이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고승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도의 양식은 대체로 팔각원당형(八角圓當型)과 석종형(石鐘型)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시대를 앞서고 후자는 시대가 내려오면서 전자를 간략화해 나간다는 특징을 지니지만 어느 것이든 원형(圓形)에 접근하려는 마음의 소산에서 조형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는 원(圓)의 완성체인 구(球)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철 큰스님의 성덕(聖德)에 걸맞는 설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표현법은 원(圓)이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최상의 표현법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 원을 입체화한 구(球)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원의 표현법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설계는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만다라적 표현법의 양식을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도 그 의의와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예컨대, 이 설계는 측면도에서나 평면도에서나 궁극적으로는 원과 구를 구현하려 하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측면도에서 보면, 지대석 위에 2층의 방형기단을 마련하고 있으며, 탑신부는 반구(半球)를 대칭적으로 놓고 그 위에 최고의 경지를 나타내는 구를 올려 놓은 것은, 돈오돈수를 수행의 표본으로 삼으신 성철 큰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사리탑이라고 하는 구조물을 통해 잘 상장화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평면에서 보아도 가장자리의 주변은 방형의 판석으로 중첩되게 하고 있으나 중심부에 가서는 궁극적인 표상으로 원과 구를 핵심적으로 배열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보면 밀교의 만다라법을 수용하면서도 그를 입체화해 나갔다고 하는 점에서 한층 더 불교적 구조물로서의 의미가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밀교의 만다라적 표현법은 평면적 회화적 표현법을 수용하고 있는 데 반하여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도는 그를 입체화한다는 의도를 충분히 살리고 있어 보다 진전된 불교적 구조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는 그 어떠한 표현법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 그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조사들의 논의가 있어 왔으나 결국 선가(禪家)에서는 원(圓)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것이라 하여 수묵(水墨)에 의한 원의 표현법을 즐겨 써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십우도(十牛圖)에 표현된 원의 표현법을 꼽을 수 있으나 그 외에도 많은 선사들은 원의 표현법을 금강경의 경의에 의하여 자주 사용하여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의 표현법에 있어서도 돈오돈수냐 점수돈오냐 돈오점수냐 하는 기본 입장이 다름에 따라 원을 최고의 경지로 표현하려고 하는 십우도에서도 그 구도법이 서로 다른 점을 보여 왔다. 예컨대 보명(普明)의 십우도와 곽암(廓庵)의 십우도가 차이점을 보이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는 선가(禪家)에서의 원(圓)의 표현양식과 밀교에서의 만다라적 표현양식을 모두 수용하면서 이들 표현법에서 이견(異見)을 보여 왔던 부분들을 극복해 냈으며, 이를 원(圓)에서 구(球)로 승화시킨 불교적 구조물의 진전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은 전통적 기법과 양식을 모두 수용하면서 그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대적 구조물로서의 불교적 상징성을 충분히 살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를 살고 간 성철 큰스님의 고귀한 정신을 충분히 나타내려 하였고, 그러기에 그것은 후대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는 불교적 상징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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