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 능인선원 전경. 김형주 기자

성철스님은 1941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정혜사에서 동안거를 했다. 정혜사에는 능인선원이 있다. 정혜사(定慧寺)는 수덕사(修德寺)와 함께 599년(백제 법왕1년) 지명(智明)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많은 고승 대덕이 수도한 곳이나 중창 및 중수의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30년 만공(滿空, 1871~1946)스님이 중수한 이후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지금은 덕숭총림 수덕사의 대표적 선원이다.

성철스님이 이 절을 찾았을 때 능인선원(能仁禪院)에는 당대의 선지식으로, 참선수행자의 지도자이자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만공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다. 만공스님이 정혜사의 조실로 있을 때는 그 문하에 항상 100여 명의 비구.비구니가 있었다고 한다.

한 선지식 아래서 세 철을 지낸 곳…유일

성철스님은 만공스님 회상에서 평생의 도반 청담(靑潭, 1902~1971)스님을 만났다. 당시 만공스님의 회상에서 처음 만난 두 스님은 이후 평생토록 도반으로 지내면서 당대 우리 불교계를 이끌었다. 청담스님은 성철스님보다 세수로 10년 연상이다. 그러나 나이를 상관치 않고 두 분은 절친하게 지냈다. 성철스님은 “청담스님과 나 사이는 물을 부어도 새지 않는 그런 사이”라고 했다. 청담스님 또한 “우리는 전생에 부부였던 모양”이라 했다.

   
 
성철스님의 행장(行狀)에서 어느 한 기록 소홀히 넘길 것이 없지만 정혜사에서의 기록은 더욱이나 예사롭지 않다. 만공회상에서 청담스님을 만난 성철스님. 만공-성철, 청담-성철은 두고두고 후학에게 많은 가르침을 일깨우고 있다.

정혜사 능인선원 가는 길. KTX 천안아산역에서 수덕사까지는 승용차로 근50분 거리다. 수덕사 큰절에는 들르지 않고 정혜사로 바로 갔다. 정혜사는 수덕사 뒤쪽 산꼭대기로 향한 길을 따라 약 3km 올라간다. 근래 찻길을 내서 그나마 가기 수월하다고 하나 여전히 깔꼬막(가파른 오르막)이다.

승용차 두 대가 스쳐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길이다. 이런데다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야 하니 웬만한 운전솜씨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거의 정상 아래에 자리 잡은 정혜사 앞마당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덕사 큰절이 멀리 자그맣게 보였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발 그것이었다.

결제중이라 방장 스님을 뵐 수 있을까 속으로 걱정했는데 원주 스님 말씀이 “방선(放禪)하면 뵐 수 있다”고 했다. 원주 스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오후4시 방선이었다. 방장 시자 스님은 큰 스님 뵙기 전에 땀부터 식히라면서 시원한 차를 내주었다.

설정(雪靖) 방장 스님은 우리를 흔쾌히 맞아주었다. 스님께 찾아온 연유를 간단히 말씀 드리고 나서 물었다.

“철 수좌가 여기 왔을 때 만공스님과 나눈 대화를 들으신 적이 있으면 일러 주십시오.” “제가 듣기로는 당시 만공 큰스님은 성철스님에게 ‘책을 많이 보셨다고 들었다. 참선을 오롯이 하려면 문자를 놓아야 한다. 식견(識見)을 버려야 한다. 참선의 병폐는 정식(情識) - 망정(妄情)과 의식이다. 정식을 떨쳐버리는 것이 조사관문(祖師關門)을 뚫는 요긴한 길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만공스님

“참선공부는 정식(情識)으로는 안된다”

청담스님

“우리는 전생에 부부였던 것 같아”

성철스님

“물을 부어도 새지 않는 그런 사이”

성철스님은 만공회상에서 세 철을 지냈다. 1941년 정혜사에서 동안거, 그리고 그 이듬해 충남 서산군 간월도의 만공스님 토굴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했다. 성철스님 행장 가운데 한 선지식 아래서 세 철을 지낸 기록은 이때의 것뿐이다.

설정스님이 들은 대로라면 만공스님이 성철스님에게 했다는 말은 언뜻 들으면 성철스님에게 공부의 길을 일러준 말인 듯하다. 그런데 당시 성철스님은 정혜사에 오기 전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 때 오도(悟道)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 ‘철 수좌’의 오도는 제방 선방에 널리 알려졌을 터이고 정혜사의 만공스님도 모를 리가 없었을 게다. 그런데도 만공스님이 ‘철 수좌’를 대하여 한 말씀이 “참선공부는 정식으로는 안된다”는 말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달리 말하면 성철스님은 참선공부의 궁극목표인 깨침이 정식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고 그 길을 다 거쳐 이른바 조사관문을 뚫었기에 스스로 오도송을 읊은 게 아닌가.

   

보리수의 푸르름은 7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짙은 녹음에서 정혜사 능인선원 수행자들의 기상이 느껴지는듯 하다. 김형주 기자

만공-성철의 대화에서 전해오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참선수행 단계 중 화두가 일상에 여일(如一)할 때를 동정일여(動靜一如)라 하고 그 다음 단계로 몽중일여(夢中一如) 즉 꿈속에서도 화두가 여일함이다. 그 다음이 오매일여(寤寐一如)요, 오매일여를 뛰어넘어야 비로소 견성이라 한다. ‘철 수좌’가 만공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몽중일여가 되십니까.” 만공스님은 “그렇지” 했다고 한다. 

전해오는 두 이야기에서 필자는 만공.성철 두 어른의 견처와 법거량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필자는 이해로써 알고 있다. “깨친 사람은 깨친 사람만이 알아본다”는 말이다.

통도사 경봉(鏡峰, 1892~1982)스님도 평소 이 말을 자주 일러주셨다. 목격도존(目擊道存,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다)이라고. 만공.성철스님의 대좌는 이미 그것으로도 도가 있었을 것이고 이 대목에서는 두 분 외에 제3자는 거기에 도가 있었다 없었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성철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스승과 제자가 무인도에 떨어졌다. 먹을 거라고는 없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잡아먹어야 그나마 한사람이라도 살아남을 그런 처지였다. 이럴 때 제자가 스승에게 말한다. ‘스님 저를 잡아 잡수시고 스님은 사세요’ 그러자 그 스승은 ‘응, 그래’ 하면서 서슴없이 제자를 잡아먹는다. 그 스승과 제자는 경허(鏡虛, 1849~1913)스님과 만공스님이다. 두 사제 사이는 그러했다.”

필자는 그 때 스님의 그 말씀을 그냥 듣고 말았다. 그 후 세월이 한참 지나면서 문득문득 스님의 그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스님께서 그때 왜 그 말을 하셨을까.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잡아먹고 먹힌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말을 왜 내게 하셨을까. 스승과 제자란 무엇인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가. 곱씹을수록 어렵고 회한(悔恨)이 남는 말씀이었다.

그때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스님,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소리를 왜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그 말을 못한 게 한스럽다. 한편으로는 그때 내 깜냥이 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만큼 못되었기에 다시 묻는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음을 이제야 안다.

어디 그뿐이랴. 스님 모시고 스님 곁에 있을 때 더 많이, 더 자세히 여쭙지 못한 게 가슴을 치는 일이나 이제 어쩌랴. 당신이 남긴 말씀을 앞으로라도 더 곰곰이 더 깊게 새길 뿐이지 않은가.

스승과 도반, 이 두 말은 절집에서만이 아니라 재가불자의 일상에서도 항상 깊이 새길 명제가 아닌가.   

 

   
 
설정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당시 만공 큰스님은 성철스님에게 ‘참선을 오롯이 하려면 문자를 놓아야 한다. 식견(識見)을 버려야 한다.

참선의 병폐는 정식(情識) - 망정(妄情)과 의식이다.

정식을 떨쳐버리는 것이 조사관문(祖師關門)을 뚫는 요긴한 길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 깊은 진리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연기(緣起)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자기만 살겠다고 남을 해치며 날뛰는 무리들이여!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

동생동사(同生同死) 동고동락(同苦同樂)의 대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 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 1984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불교신문 2733호/ 7월6일자]